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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Sep 22. 2023

일상

일상에는 지키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삶의 부조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반복적 일상이 가지는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모든 이가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를 간절히 꿈꿨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개인이 삶을 지탱할 힘이 되어 주며,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처럼 일련의 삶의 흐름을 잘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일상의 평안이 전제되어야 긴장된 삶에서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살 수 있다.


물총새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먹잇감을 응시한다. 순간의 결정이 내려지면 망설임 없이 몸을 수면으로 내리꽂는다. 사냥은 순식간이다. 빠른 날갯짓으로 물에서 박차고 올라 파란 등을 보이며 바위로 다시 날아와 앉는다. 부리에는 있어야 할 사냥감이 보이지 않는다. 실패다. 물총새는 실패를 괴로워하지 않는다. 실패는 일상이다. 물총새에게 실패의 기억은 필요치 않다. 그 녀석에 필요한 것은 실패가 아닌 물고기다. 물총새는 먹잇감에 진심이다. 간절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물총새는 늘 그렇게 몸을 날려 먹잇감을 쫒는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개인의 일상도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조금씩 변한다. 변화가 쌓이면 결국 우리의 삶도 변한다. 그 변화에 맞는 일상을 만들고 지키려면 간절함이 필요하다. 우리가 쉽게 만나는 누군가의 일상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간절함이 스며있다.

물총새의 일상은 나에게 특별한 사건이 된다.

2023년 9월 11일 월요일

교통 상황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막혔다. 수성교에서 우회전하여 신천대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서행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볼 요량으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렇게 유난을 떨어서인지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다.

송해공원에는 가을맞이 화단 조성이 한창이었다. 여성 작업자들은 분주하게 호미를 놀렸다. 이름 모를 다양한 식물이 화단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송해공원을 에워싸고 있는 양쪽의 산기슭에서 아침부터 꾀꼬리 울음소리가 마치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는 듯 메아리쳤다. 붉은 석산은 산책로를 따라 피어났고, 그 사이로 여우꼬리 같은 개맨드라미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수많은 가을맞이 화분이 작업자들의 손에 바쁘게 심겼다.

2023년 9월 12일 화요일

구름 낀 평온한 아침이었다. 하천 중앙에 만들어진 모래톱에는 흰뺨검둥오리가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시냇물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연신 사냥 중이었다. 그 와중에 두 마리의 물총새도 함께 사냥 중이었다. 물속으로 곤두박질친 녀석은 입에 물고기를 물고 나오더니 바위에 사냥감을 여러 번 때린 후 삼켜 버렸다. 박각시는 꿀을 빨기 위해 긴 입을 연신 꽃에 찔러 넣으며 돌아다녔다. 제비나비는 침입자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석산 꽃봉오리 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꿀을 빨고 있었다. 맨발 걷기를 하시는 한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흰뺨검둥오리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

2023년 9월 13일 수요일

아침 출근길, 밤새 비가 조금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차장은 촉촉하게 젖었고, 차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송해공원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었다. 높은 습도로 인해 답답함이 조금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작은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그 길과 이어지는 곳에서 공사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쿵쾅대는 소리에 모든 소리가 내려앉았다. 하늘로 날아오른 꾀꼬리 한 마리가 그 소리에 우왕좌왕하며 날고 있었다. 송해공원 주변에는 소리 없이 가을을 알리는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2023년 9월 14일 목요일

비가 왔다. 나의 일상인 산책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우산을 펴고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늘 그렇듯 꾀꼬리 두 마리가 산을 넘어 날아갔다. 한 나무 위에 잠시 앉아 비를 맞더니 이내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책로에는 오늘도 붉은 꽃무릇이 잔뜩 피어 있었다. 사진을 찍었다. 이때 아침에 늘 맨발 걷기를 하시던 한 분이 말을 건넸다. "매일 아침 뭘 그리 같은 걸 찍어요?" 매일 일상적인 인사만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매일 맨발로 걸으시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간절하니 그렇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기 일상을 지키기 위한 간절함으로 매일 맨발 걷기를 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건강을 잃어야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받아들인다.

맨발은 진흙을 피하지 않는다.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오늘도 비가 왔다. 일기 예보는 당분간 비를 예상했다. 낮게 내려앉은 짙은 비구름 사이로 보이는 송해공원과 옥연지를 바라보며 장작 타는 듯한 빗소리와 함께 감상에 잠겼다. 산책길에는 두 분이 맨발 걷기에 열심이었다. 진흙 바닥에는 발바닥 모양이 여러 방향으로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맨발은 진흙을 피하지 않았다. 진흙에 찍힌 선명한 발바닥 모양에는 행복감이 묻어 있었다. 일상의 작은 변화는 그렇게 기록되고 지워지고 있었다.


송해공원의 물총새, 흰뺨검둥오리, 꾀꼬리와 같은 작은 생물의 일상은 나에게 신비로움이 된다. 작은 존재의 힘찬 일상이 나에게는 삶의 희망이 된다. 일상을 찍은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내면, 다들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지루하기만 한 나의 일상도 누군가에게 흥미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삶은 힘들어진다. 일상으로 삶을 충전할 수 있기에 새살이 돋아나듯 마음이 자란다. 일상이 있기에 삶에 스며드는 작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산책 시간은 삶의 바로미터가 된다.


송해공원 속 모든 일상의 발자국은 나에게 특별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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