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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Nov 29. 2023

삶이여 내게로

여유와 설빈 3집 [희극] 발매 기념 공연을 마치고

지난 11월 25일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으로 3집 작업의 긴 여정을 제주에서 마무리하였다. 앨범이 발매되고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기도 했고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닿을까 걱정했는데 이제야 안심이 된다.


제주의 몇 공간에 앨범 소식을 전하러 들렀다. 잘 돌아다니지 않았던 탓에 3년 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다. 술을 달고 살던 이는 술을 끊은 지 좀 되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또 다른 이는 전에는 없던 주름과 하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본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무언가 삭제된 시간들이 있는 것 같았다.


발매 기념 공연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팀 '모허'의 이소와 민규를 초대하려 했다. 이소는 내게 섭외 연락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선생님인 강에게 모허랑 공연을 함께할 생각이다 말했었는데, 강이 이소의 영어선생님이었어서 둘이 미리 얘기가 오간 것이다. 강은 이소에게 말했다. 너 여유와 설빈 공연에 베이스 친다며, 민규도 같이 한다던데? 날짜는 11월 25일이고. 이소는 난데없는 소식이지만 일단 달력에 저장했다고 한다. 제주는 땅이 넓고 사람들 사이는 좁다.


전화로 이소에게 베이스를 부탁한다고 말했더니 그가 깔깔 웃었다. 여유와 설빈은 모험정신이 있군 생각했다고 한다. 민규에게는 아이리시 부주키를 부탁하였다. 둘의 작업실에서 한 번, 우리 집에서 한 번 합주 시간을 가졌다. 이소는 모험이라 표현했지만 이번에도 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둘은 음원 속의 여유와 설빈과 계속 합주를 하며 완벽히 맞춰놓은 상태였다. 타브악보까지 그리며 매 순간 정성으로 임했다.


이소는 오래 알고 지냈고 민규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같이 밥 먹고 합주하며 더 가까워졌다. 둘은 태국에서 만나 모허를 결성하였고 지금은 앨범 작업을 차근차근 하고 있다. 민규는 이소의 자랑이다. 이소는 민규가 아일랜드에서 살 때 촬영했던 피자집 광고를 보여주며, 영상 속에 멋진 주방장 모습을 한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또 민규의 수염빗을 친히 가져와 보여주며 북슬한 턱수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려주었다.

이소의 자랑거리. 민규의 수염빗.


보석과 창원에게도 앨범 발매 기념 공연 계획을 알렸더니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보석은 지리산, 창원은 서울에 살기 때문에 합주 영상을 보며 따로 연습해야 했다. 공연 전날엔 우리 집에서 하루 묵으며 합을 맞춰보았다. 보석은 마치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호흡 연습도 매일 한 시간 넘게 하고 틈틈이 트럼펫 연주를 연마하였단다. 이번 공연의 앵콜곡은 1집의 생각은 자유였는데 하모니카 라인을 모두 따왔다. 창원은 여유가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곡의 뉘앙스를 달리한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퍼커션을 연주했다.


공연 당일 아침에는 램프스튜디오에 모여 다 같이 인사하고 식사를 했다. 점심엔 장비를 차에 싣고 반짝반짝지구상회로 이동했다. 반짝반짝지구상회는 재주도좋아의 공간이다. 재주도좋아는 3집이 나오면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하자고 먼저 얘기해 준 고마운 곳이다. 도착해 보니 난로의 온기로 공간이 훈훈하게 데워져 있고 보리차와 군고구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판매할 앨범들도 챙겨갔는데 공간에서 예쁘게 배치해 주었다.


리허설은 세 시간 가까이 이루어졌다. 처음 가는 공간이어서 소리를 잡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경덕이 엔지니어로서 전체적인 음향을 조정하고 중간중간 앰비언트 사운드를 넣어 노래의 질감을 살렸다. 연주자들은 각각 연습을 했어도 다 같이 합을 맞춘 게 처음이어서 한 곡 한 곡 자세하게 짚어갔다. 오랜 시간 이루어지다 보니 점점 목이 갈라지고 뱃심이 다 빠져서 말미에는 위기감이 들었다.


여유의 주문이 많았다. 마이크의 성질이 보컬과 어울리지 않아 몇 번 교체했고 악기들의 톤과 음량을 섬세하게 조절했다. 타이틀곡인 밤하늘의 별들처럼을 할 때는 악기 소리가 가득 채워져서 보컬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변화의 폭이 크도록 느껴지면 좋겠다 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소리를 조정했다. 그가 작업할 때의 모습은 잘 벼려 낸 칼 같다.

쉬는 시간에 연주자들. 왼쪽부터 창원(드럼), 민규(아이리시 부주키), 이소(베이스), 보석(트럼펫).
사운드 엔지니어로 함께 한 경덕


6시에 공연을 시작하고서는 체감상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리허설을 오랫동안 해서인지 한 곡 끝나는 것도 아쉬웠다. 여유가 공연 전에 창원에게 '형, 나 타이트하게 갈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유는 가능하다면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노래만 들려주는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관객들의 눈빛이 근래에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올해 1월 앨범 작업을 시작할 때, 계절이 다 지나고 다시 추운 날 어디에선가 열릴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어렴풋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현실은 상상보다 더 울렁거렸다. 휘몰아치는 3집의 노래도, 촉촉한 시선도. 정확히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과다 복용했다.


여유는 육지에서 온 사람이 있냐며 관객들에게 물었다.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는 거창한 선물을 할 듯이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아주 천천히 '오.. 그렇다면 그분들과는 셀카를.... 찍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건 마치, 상품은 애플에서 나온 아이폰!!.......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와 같은 일이 아닌가. 공연 중에 예정에 없던 엉뚱한 말을 들으면 정말 황당하다. 여유는 이런 일을 몹시 즐기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뒤풀이는 모허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친구와 연주자의 친구까지 해서 열댓 명 정도 모였다. 정혁은 우리 공연을 보러 서울에서 내려왔다. 그는 맑은 눈망울과 따뜻한 음색을 가진 음악가로, 웃음도 많고 장난기도 많다. 제주어에 내적 친밀감이 있다며 사투리를 쓰려고 했는데 제주어 퀴즈를 내면 '모르맨^^' 하고 히죽 웃었다. 우리는 공연자들이 다 같이 모인 게 오늘이 처음이라는 사실, 공연 중에 최성원 선생님이 즉흥적으로 질문받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 리허설과는 다르게 진행된 곡 등 공연과 관련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었다. 정혁은 공연이 알고 보니 완전 재즈였다며 해맑게 박수를 짝짝 쳤다.


명재를 오랜만에 만났다. 명재는 우리가 예전에 DJ로 있었던 인디음악방송의 국장이었다. 그는 인디음악가들이 함께한 예능을 만든 업적이 있고, 서로가 수치심을 공격하는 장 속에서 수많은 웃음을 발굴한 주역이다. 지금은 기획을 쉬고 있는데 언젠가 다시 시작될 그의 콘텐츠가 기대된다. 명재는 플랫폼이 사라져 가는 이 시점에도 우리의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변에 소문 좀 많이 내달라고 했더니 그는 네가 스피커가 되면 되지, 했다. 그래서 덕분에 이런 글도 써보는 것이다.

보석과 명재

3집 발매를 기념하는 이번 공연에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육지에서는 예정된 공연이 없다고 하자 한달음에 내려온 팬, 제주에 사는 팬, 우리와 연주자의 친구들. 공연을 함께 준비한 재주도 좋아 식구들. 공연을 위해 상당한 시간과 마음을 들인 경덕, 민규, 보석, 이소, 창원. 이들이 보내준 기운은 분명 여유와 설빈에게 고팠던 한 줄로 기록될 것이다. 모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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