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에 공연하러 갔을 때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늘 구석자리에 앉아 조용히 공연 영상을 찍던 사람. 여유가 솔로로 노래하며 그중 몇 곡만을 설빈이 코러스로 돕던 때, 무대에서 그분이 우리 영상을 찍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이제 막 같이 활동을 하려는 우리에게 카메라가 붙는다는 사실이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여유와 설빈 활동 초창기에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알만한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특히 행사에서 우리를 섭외했던 기획자 몇몇은 공연이 다 끝난 후에 커버 음악이 하나도 없어서 당황했다며 난색을 표했다. 사흘을 계약해 놓고 1일 차 공연 후에 내일은 안 나와도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고.
관객은 아무도 없고 공연자들만 있는 공연도 기억이 난다. 관객이 없고 돈도 안 되는 공연이었지만 고생했다, 너희 노래가 좋았다, 다음에 또 보자고 멋쩍은 웃음을 나누었던.
그런 와중에 우연히 우리 공연을 보게 된 몇 명이 우리를 촬영하고, 허접하게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던 데모 CD를 사주었다. 우리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는 채 노래를 부르는데 공연이 끝나고 몇 명이 친히 와서 공연 후기를 생생하게 말해주고 다음 공연이 있었으면 하고 희망을 표했다. ‘줄 수 있는 게 우리 노래 밖에, 가진 거라곤 우리 노래 밖에 없는‘ 여유와 설빈을 처음 비춰준 사람들이다.
제주도에 내려오고 나서는 제주 자체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무사(왜) 영(이렇게)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제주도 토박이들의 말들을 바로 해석하는 게 불가능해서 한동안은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 했다.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같이 찡그리고. 8년 차인 지금은 다행히 리스닝은 되는데, 촌에 가면 여전히 어리벙벙 해진다.
제주도에서 처음 우리를 보살펴줬던 사람들은 먼저 내려와서 터를 잡고 있던 외지인이다. 아무 연고 없이 내려간다고 친구가 걱정하며 제주에 사는 몇 명을 소개해줬다. 여유에게는 일자리도 주었다. 집에 놀러 가서 밥도 얻어먹고 귤도 받고 제주에서 사는 팁도 얻었다.
은인 같은 토박이 선생님들도 만났다. 성격이 괄괄하고 화끈한 게 딱 우리 엄마 같은 선생님과, 요망지게(야무지게) 자기 할 일 하며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선생님. 실생활에서 유용한 제주어를 자주 전수해주던 또래 선생님. 제주에 사는 게 힘든 것 같으면서도 그들 덕분에 육지로 당장 되돌아갈 만큼은 아니게 버틸 수 있었다.
차근차근 1집, 2집을 내고 활동하며 공연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초창기에 우리 공연에 찾아와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모두 인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일 마지막에 와서 얘기한다. 어떤 노래가 와닿더라. 이 노래 영제는 이게 어떤가? 곡 순서가 좋았다. (이미 많이 사놓고는) 앨범 더 사려고.. 이거 뭐뭔데 맛있다고 해서 샀으니 먹어라. 그런 찰나의 만남들이 활동을 이어가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그동안의 앨범에 함께했던 이들을 비롯하여 이번 3집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들인 품에 비하면 보상이 수지가 맞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한 사람들. 무리한 부탁에도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다독이더라.
2024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후보에 오른 일과 최우수 포크 음반/노래 수상이 무척 기쁘다. 그간 평단에서 이만큼 주목받은 적이 없었는데. 잘 드러나지 않는 음악가들에게도 고루 관심을 두니 고마운 일이다. 최근 공연에는 이번 기회로 우리를 알게된,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왔다. 모두의 덕분에 음악 하는 일의 수명이 조금씩 연장되고 있다.
무대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면 다들 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그들이 쓴 공연 후기를 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들도 얼마나 찬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앞으로도 그런 만남이 이어졌으면, 우리의 음악도 당신들이 사는데 작은 보탬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