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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봉 Jul 04. 2022

박사과정 그녀

중국 유학생

나와 중국 유학생인 그녀는 교육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평생교육 전공인 나와 교육행정 전공인 그녀는 타 전공수업인 교육사회학 수업에서 만났다. 눈부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금요일 아침 열 시에 우리가 함께 듣는 수업이 있다. 수업은 다섯 명이 수강을 하는데 교수님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빙 둘러앉아서 교수님과 토론을 하면 진행되는 대학원 수업이다. 그녀는 매 수업 시간마다 일찍 와서 의자와 책상 위치를 바꾸어 수업 준비를 해 두었다. 그녀를 보면서 ‘만약 내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면 과연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 고분고분 생각해 본다.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수업은 어려웠다. 한글로 쓰인 책이지만,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프랑스 사회학자들의 이론은 나 에게도 어려웠다.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기 버거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수업 시간에 힐끔 그녀를 보니 난감해하고 있었다. 내가 수업을 마치고 정리한 내용을 보내주기로 하고, 서로의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았다.


부르디외의 문화연구에 관심이 있는 그녀는 박사논문을 중국의 데이터로 쓰고 싶어 했다. 한국어가 서툰 그녀가 질적 연구로 박사 학위논문을 쓰는 것은 힘들 것 같다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조금 의기소침했지만 이내 밝은 모습을 찾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적응하며 지천에 꽃을 피운 개망초가 떠올랐다. 개망초의 꽃말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 주고, 멀리 있는 사람들 마저도 가까이 다가오게 할 수 있는 그녀다. 덕분에 수업시간 분위기는 환 해졌다. 빛깔이 야단스럽지 않지만 그윽한 향기를 담아내는 꽃과 같이 볼수록 마음을 이끌리게 하는 정겨운 그녀이다. 


그녀가 수업을 듣는 우리 다섯 명을 자신의 자취방에 초대를 했다. 나는 혼자 살아본 기억이 없어서 내심 부러워하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갑 티슈와 커피를 사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중국식 비빔국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땅콩소스의 고소함과 토마토소스의 달달함이 입안에서 만나서 온몸의 오감 세포들을 깨웠다. 중국 사탕과 과자까지 후식으로 준비해 두었다. 우리가 비빔국수를 먹는 동안 빠른 음악을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소화가 잘 되는 부드러운 음악으로 선곡을 했다고 했다. 그녀를 우리를 위해 아주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 나는 함께 간 일행들 중에서 뒤에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서야 했다. 창밖에 추적추적 안개 같은 빗방울이 날리고 있었다. 혼자 내려갈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4층에서 1층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세심한 배려에 나는 또 감격해 가슴이 뭉클했다. 


산천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가고 산 계곡은 봄의 물결 소리로 가득한 날, 수업을 마치고, 박사과정 3학기인 나는 종합시험을 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학교를 갔다. 수업 시작 전 정신을 되찾으려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먹기로 하였다. 머리가 띵 한 탓에 정수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면서 컵을 놓쳤다. 뜨거운 물이 내 왼손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장실에 가서 차가운 물로 열기를 식혔지만 수업하는 동안 화끈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마시려고 준비한 유리병에 차가운 물을 담아서 나에게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에는 자판기에서 시원한 캔 음료를 뽑아서 주었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차가운 것을 대고 화끈거리는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다행히 내 손에는 흉터가 남지 않았다.


햇빛이 밝고 찬란한 수업 마지막 날에 그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지고 학교에 왔다. 교수님과 우리들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몇 년 만에 찍어 보는 종강 사진이냐며 그녀의 작은 행동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녀는 이런 친구이다. 그녀는 세심함과 즐거움을 뿌리고 다닌다. 


중국에서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수료를 하고, 학위논문을 쓰는데 우리는 서로가 지적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격려하며, 의지하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것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솔길을 내는 것이다. 그 오솔길을 통해 서로의 마음속으로 편안히 드나들게 된다. 수업 시간의 모습이 다시금 되살아나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직은 우리가 한국과 중국 그리고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미비하나 서로 버텨주는 나무가 될 것이며, 서로 내어주는 길이 될 것임에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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