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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Feb 05. 2023

바빌론, '한 시대'에 담긴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영화

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나이트'가 생각날까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이 공개됐다. 굳이 '공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만큼 궁금했기 때문이다. 위플래쉬(2015)와 라라랜드(2016)가 인상 깊었던 관객은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젊은 감독이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개인적 견해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듣는 영화'이자 '보는 음악'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데미언 셔젤만큼 '듣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있을까? 적어도 필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바빌론이 전작들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빌론의 시간적 배경은 할리우드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하는 1920년대다. 할리우드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주요 공간적 배경은 당연히 LA다. 무성영화배우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당대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피트)와 시골 출신 소녀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 이렇게 세 인물이 각자의 방법으로 '한 시대'를 살아간 흔적을 다뤘다.


데미언 셔젤답게 음악을 '보면서' 영화를 '들을 수' 있다. 한 번 더 언급할 정도로 가장 인상 깊은 특징이다. 이는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도 음악감독을 맡았던 '저스틴 허위츠' 덕분에 가능했다는 견해다. 여기에 원색의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낸 컬러그레이딩은 이제 데미언 셔젤의 시그니처가 됐다고 봐도 될 듯하다. 바빌론의 질감과 색감은 라라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과 색감만큼 관객에게 '보는 맛'을 선사한 부분은 1920년대 할리우드를 실감나게 재현한 세트다. 이와 관련해 바빌론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플로렌시아 마틴'은 '완벽한 재현'이라고 자평했으며, 데미언 셔젤 "단순히 당시 LA의 재현이 아니라, 각각의 영화스튜디오까지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도전이었다"강조한 바 있다.


반면, 시나리오 자체만 봐서는 강하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인지 다소 모호하다. 완성도나 작품성 때문이 아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갱스오브뉴욕'(2003)과 '아이리시맨'(2019),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나이트'(1997)와 '데어 윌 비 블러드'(2008) 등 한 감독이 한 시대를 바라본 관점을 비교적 긴 러닝타임(3시간가량)에 눌러 담은 작품이 그간 적지 않 기시감이 들 수 있어서다. 큰 틀에서는 시대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멜로(라라랜드)나 주인공의 성장(위플래시)에 장르적 기대감을 품은 관객이라면 취향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바빌론을 보는 내내 부기나이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감탄을 자아낸 오프닝 시퀀스(롱테이크 쇼트)를 차치해도 전반적인 분위기나 스토리에 담긴 철학이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주인공인 매니와 넬리를 세바스찬미아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라라랜드와도 교집합이 적지 않은 작품이다. 여기에 속도감 있는 화면 전환도 이미 위플래시에서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정리하면 특정 관객에게는 '새로움을 원하는 부분'이 전작들과 비슷하고, '기대했던 익숙함'은 찾아보기 힘든 영화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다면 추천하고 싶은 감상 포인트가 일부 있다. 우선 브래드피트의 '현재'는 본인이 연기한 잭 콘래드가 극 중에서 겪었던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최근 들어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든 나이가 됐다는 점 등이 그렇다. 이혼과 재혼이 흔한 할리우드의 특성을 감안해 안젤리나 졸리와의 과거는 포함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등장한 넬리(마고로비)가 마지막은 가장 초라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첫 등장이 화려함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매니(디에고 칼바)와 잭(브래드피트)이 마지막 신(Scene)에서는 더욱 팩트가 있었다.


특히, 극 중에서 매니와 넬리의 '엔딩'을 비교하면 꿈의 실현 여부가 무조건 삶의 행복의 정도와 비례하진 않았다. 이는 전작인 위플래시, 라라랜드와도 철학을 공유하는 부분이다.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을 최고값에 둘지, 아니면 평균이나 중간값, 혹은 최빈값에 둘지는 개인의 가치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데미언 셔젤은 무조건 최고값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듯 하다. 


개인적 시각으로는 데미언 셔젤이 엔딩 시퀀스에서 스타(배우)가 아닌, 영화사 임원으로 일했던 매니에게만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선사한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영화사와 투자자들을 제외하면 당대의 스타라 할지라도 배우 역시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한시적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섞여 있을 것이다.


바빌론의 결말에서 어떤 이는 꿈을 이루고 삶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다. 어떤 이는 꿈꿨던 삶을 잠시만 만끽하고 유지하지 못했지만, 결국에는 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얻었다. 가장 비참해 보였던 이는 힘들게 꿈을 이루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가 됐지만, 더이상 최고가 아니게 된 삶은 견뎌낼 힘이 없어진 이였다.


과거 데미언 셔젤은 전작인 위플래시의 주인공 앤드류가 각고의 노력 끝에 갈망했던 경지에 올랐지만, 영화가 끝난 시점 이후의 삶은 약물 중독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후속작인 라라랜드 바빌론도 결국 방향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는 같은 철학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한 줄 소감 : 이토록 화려고 초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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