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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Nov 26. 2023

김성수 감독 '최고작'이 된 서울의 봄

탄탄한 연출이 사소한 단점들을 상쇄...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될 수도

조심스럽게 짐작컨대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될 수도 있다. 먼 훗날 김성수 감독 평생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봐도 가장 뛰어난 웰메이드 영화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연출, 연기, 시나리오, 영상미, 사운드 등 모든 기술적 측면에서 흠잡을 데가 딱히 보이지 않은 수작이다. 모 평론가의 말마따나 '검사의 봄'에 되돌아보는 '서울의 봄'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대한민국의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의 가슴을 관통한다.


김성수 감독. 아마 1970~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장 먼저 영화 '비트'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 비트에서 주인공 '이민' 역할을 맡았던 정우성이 '태양은 없다'와 '무사', '아수라' 등을 거쳐 김성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했고, 올해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영화가 '서울의 봄'이다.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둘 다 '비트'를 떠올려보면 비교가 미안해질 정도로 발전했다.


이미 '아수라'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지만, 이렇게 빨리 이 정도의 웰메이드 영화가 김성수 감독의 손에서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영화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잔잔한 '웃음' 한 번 없이, 이 영화는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관객의 멱살을 휘어잡고 뚜벅뚜벅 진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쳐 떨어져 나갈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그만큼 '재밌으니까'.


김성수 감독의 역대 영화를 통틀어 이런 치밀한 짜임새는 본 기억이 없다. 통상 작품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을 때 오히려 '힘'이 떨어질 때가 많은데 이렇게 잘 버무리다니 놀라울 뿐이다.


또, 보는 이에 따라 너무 의도가 뻔한 메시지들이 섞여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런 점을 감안해 최대한 예리한 시선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분하기까지 하다. 그간 선거를 앞두고 개봉한 데다 노골적인 시나리오로 정치적, 이념적 논란이 있었던 한국영화들을 상기해 보면 더 그렇다. (이 영화에 한해 김성수 감독을 평가하면 연출의 귀재로 보일 정도다)

반란군 수장인 전두광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이미 비주얼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극 중 전두광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전두광과 황정민을 자연스럽게 넘나 든다. 황정민이면서도 전두광이고 전두광이면서도 황정민이다. 가장 감탄한 부분인데 황정민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이토록 전두광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무리 '믿고 보는 황정민'이라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사견이지만 오히려 모티브로 한 실제 인물과의 매칭에만 힘을 쏟았다면 '연기'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정민은 영리하게 비주얼에서는 '전두광'을, 연기에서는 '황정민'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태신 장군 역할을 맡은 정우성을 처음에는 살짝 미스캐스팅으로 생각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어찌 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정우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극 중에서 전두광과 극한으로 대립하는 이태신 장군 역의 배우 정우성은 또 어떤가. 미안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살짝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정우성'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연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배우가 평소 밝혀왔던 가치관이나 언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두광을 잘 소화해 낸 황정민과는 다른 의미로 정우성 또한 이태신에 잘 녹아들었다. 어쩌면 김성수 감독뿐만 아니라 정우성에게도 평생의 필모그래피에서 서울의 봄이 최고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배우 이성민이 이번에는 10.26 사건을 수습하는 계엄사령관으로 출연했다.

황정민과 정우성의 인복인지, 그만큼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보면 '어!' 소리나 나올 정도의 배우들도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 역할을 맡은 이성민을 비롯해 박해준, 김성균,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정동환, 김의성 등이 영화에 힘을 보탰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메시지는 다양했지만 이야기의 목적지만큼은 한 곳만 바라본 점도 칭찬하고 싶다. 딱 9시간이다. 1979년 12월 12일 9시간에 모든 화력을 집중해 완성도를 높였다.

자료화면과 자막으로 그 이전의 사건과 이후의 역사를 담담하게 설명한 '역할분담', 그래픽과 화면분할 등을 통해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를 전달한 '효율성'도 서울의 봄 연출의 백미다.


물론, 실제 여부를 떠나 시기를 생각하면 의도가 있는 영화로 비칠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너무 잘 만들었다. 혹여 의도가 있다 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의도적 메시지라 해도 반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연출이 뛰어나다. 이런 경우 가끔 완벽하게 주객이 전도된, 메시지가 작품성을 집어삼키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서울의 봄은 탄탄한 연출과 감탄이 나오는 연기력 아쉬운 점들을 모두 상쇄한다. 영화로 다루기 어려운 소재였기에 더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한 줄 소감 : 여러 의미로 잘 만든 영화... 여러 의미로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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