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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Dec 09. 2023

애플TV+ 홍보물이 돼 버린 나폴레옹   

극장까지 찾아간 관객이 몰수당한 100분의 행방은? 애플TV+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리들리 스콧이 누구인가. 할리우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작품들이 필모그래피에 수두룩한 감독 아닌가. 그런데 12월 6일 개봉한 영화 '나폴레옹'은 중요한 무언가가 대거 사라져 버린 작품으로 보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역시나! 극장 개봉 이후 <애플TV+>에서 스트리밍 할 예정이고, 애플TV+에서는 극장판보다 무려 100분가량이 추가된 '원작 아닌 원작'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이상하더라니.. 추운 날씨에도 극장까지 찾아간 관객들은 몰수당한 100분을 애플TV+를 구독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시작부터 애플 오리지널 필름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나타나길래 불길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는데 이런 방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이 대관식도 뜬금없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래서 '편집을 위한 편집'이 무섭다.

리들리 스콧이 디렉터스컷(director's cut)을 많이 내놓는 감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번엔 과했다. 감독판이 아니어도 비교적 서사의 흐름이 매끈했던 전작들과 달리 나폴레옹의 편집은 관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프랑스 대혁명 전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관객은 각 시퀀스가 어떤 시점이고, 어떤 사건을 다루고 있는지 감이라도 잡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은 역대급 불친절함에 도대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을 거다. 그저 영화가 끝나면 나폴레옹이 얼마나 '지질한 사랑꾼'이었는지 정도만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워낙 편집이 자유분방한 터라 매 순간 '이렇게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폴레옹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와중에도 명불허전 열연을 펼쳐서다. (물론 본인은 극장판이 이렇게 편집될 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10분도 아니고 100분이나 행방불명된 극장판은 애플TV+의 홍보물이 돼버렸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거다. 영화가 시간에 쫓기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리들리 스콧이 선사한 영상미나 배우들의 열연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영화 나폴레옹에서 조제핀 드 보아르네 역을 맡은 바네사 커비.

'대량 편집'을 눈 감아 주더라도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여기부터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영상을 보고 있자면 미묘한 차이지만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옷감으로 비교하자면 원단의 재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OTT 서비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TV가 아닌 극장 스크린으로 감상하면 이런 기분일 거다. 5~6부작 정도로 제작해 TV드라마로 봤어야 적절한 필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다.


마지막으로 모든 배우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점도 아쉬웠다.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기에 상대적으로 큰 단점이 아니지만, 문제는 언어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감정 표현이나 표정에서도 프랑스가 아닌 미국, 혹은 영국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간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로마군도, 독일군도, 프랑스군도 모두 영어를 쓰기 때문에 적지 않은 관객이 무뎌졌을 수 있겠지만, 2020년 선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바바리안'만 해도 라틴어를 쓰는 로마군과 독일어를 쓰는 게르만족을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영화 나폴레옹은 편집만 공을 들였다면 그 외 아쉬운 점은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의 수작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 중의 한 명, 리들리 스콧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한 줄 소감 : 애플TV+ 홍보물...예고편이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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