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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Dec 22. 2023

성웅의 마지막이 꼭 웅장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순신 3부작의 마침표 '노량', 깔끔한데 뭔가 허전하다

12월 20일 개봉한 노량을 보고 왔습니다. 깊숙이 들어가서 평가하기에는 할 말이 많지 않은 영화라서 그냥 가볍게 하고 싶은 얘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우선 극장을 찾아갈 정도의 영화인지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잘 만든 영화인데 조금 허전해요. 물론 명량(2014)과 한산(2022)을 보신 분들은 '노량'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순신 장군(제독)의 여정을 함께 마무리한다는 마음으로 보셔도 될 거 같습니다. 충무로에서 충무공을 다룬 첫 영화이자 무려 3부작이니까요.


다만, 재밌게 보신 분들에게는 좀 실례일 수 있지만 저는 전작들을 잠시 떼어 놓고 '노량' 자체만 보면 크게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하나씩 설명해 볼게요.

백병전이다!

우선 전작인 명량과 한산에 비해 길어진 전투 시간에도 불구하고 전투 자체의 임팩트는 크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관객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영화이다 보니 전투보다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 더 집중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한민 감독이 애초에 이 시리즈를 기획한 취지도 이순신 장군 개인에 대한 감정이 컸을 테니까요.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관객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전투들을 다룬 전작들과 달리, 마지막 작품인 노량은 전투 자체보다 이순신이라는 개인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노량은 명량이나 한산보다 더 감정선이 굵었습니다. 1편 명량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2편 한산에서는 전우애를 강조했다면 3편 노량에서는 자식에게 느끼는 비통한 감정이 주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쟁의 마지막 전투라는 중압감도 있습니다. 과거 전사한 장병들도 기려야 하고요. 연합함대를 꾸려 협력해야 하는 명군과의 엇박자도 고민을 깊게 하는 외부 요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전쟁(3부작)도 마무리해야 하고 이순신 장군의 여정(과거의 수많은 고난)도 장엄하게 갈무리해야 합니다. 당연히 여러 부분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참고로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치른 전투 중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시작한 전투가 동이 틀 때까지 끝나지 않았죠. 그 이전의 전투들이 효율성과 안정성을 우선했다면 노량해전은 속된 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싸움이었습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더 이상 뒤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군하는 왜군에 큰 피해를 입혀 또 다른 전쟁을 막으려는 취지도 있었죠. 어차피 전투에서 살아남아도 조정에서 이순신 장군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이니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배우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이 그간 겪었던 고통과 마지막 전투를 앞둔 시점의 각오를 꽤 훌륭하게 연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배우들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는 신이 많았다는 겁니다. 이는 명량과 한산에서도 보였던 부분인데 연출자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면 일정 부분 이해는 됩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다루는 영화는 전후 사정과 당시 정세를 압축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모든 관객이 임진왜란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니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대사나 플래시백을 통해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는 신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감정선이 지나치게 분산돼 있다는 겁니다. 이는 양날의 검인데요.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조선군도, 왜군도, 명군도 차별 없이 각자의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해 준 것은 좋지만, 여기에 이순신 장군 개인의 방대한 감정까지 소화해야 하니 어느 한 곳에도 깊게 몰입하지 못하는 관객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장점이자 단점인 부분입니다.

연기 자체만 놓고 보면 명수군 부총병 역할을 맡은 배우 허준호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아쉬운 점까지는 아니지만 명량과 한산의 오프닝에서 느껴졌던 박력도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서 그런 걸까요. 때문에 전작들보다는 더 차분하게 서사가 진행됩니다. 그런 이유로 명량이나 한산의 전투에서 느꼈던 박진감을 상상하고 극장을 찾는다면 조금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과거 한산을 리뷰하는 글에서 '명량'과 '한산'의 오프닝을 역대 한국영화 중 최고의 오프닝으로 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총평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3부작을 마무리하는 측면에서는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고, 노량을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낮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할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강하게 추천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애매한 영화지만 3부작을 묶어서 평가한다면 김한민 감독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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