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용 Jan 10. 2024

플라워 킬링 문, 우아한 야만과 잔혹한 문명 사이

역설적으로 '미국의 힘'을 보여준 영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세요.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한 장면.

엔딩을 앞두고 다양한 감정이 밀려오는 영화였습니다. 오늘은 마틴스코세이지 감독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장황하게 평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제가 이런 말, 저런 말을 길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신 분들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실 거라 생각돼서입니다. (제가 느낀 감정과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고요)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점은 꽤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겁니다.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와 로버트드니로는 말할 것도 없고 릴리 글래드스톤 등 나머지 배우들도 훌륭한 내면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때문에 극 중반부터는 사건의 내용 자체보다 마음 놓고 솔직할 수 없는, 무언가 비밀을 하나씩은 담고 있는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전이 꽤 흥미롭게 연출돼서 '스릴러' 느낌이 살짝 감돌기도 합니다.


'오일머니'를 노린 백인들이 원주민(오세이지족)들을 한 명씩 살해한 사건이 어디 보통 사건인가요. 지금이야 '자유'의 상징이 돼버린 미국이지만, 정말 잊고 싶은 치부일 겁니다. 그런데도 마틴스코세이지는 '거장의 힘'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런 영화가 제작될 수 있다는 자체가 '미국의 힘'으로 비치기도 하죠.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한 장면.

플라워 킬링 문이 좋은 영화라고 느낀 이유는 녹픽션 소설인 원작 '플라워 문'을 훌륭하게 연출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백인 수사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결국 백인 중심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던 원작과 이야기 방식이 달라서가 아니에요. 1920년대의 사건을 소재로 삼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비단 인종문제뿐만이 아니죠. 아직도 우리는 '야만적인 갈라 치기'에 익숙하지 않습니까. 말이 '익숙'이지, 거의 즐기는 수준이죠.


난폭하고 잔인한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사는 백인 가족을 몰살하자 백인남성들로 구성된 기병대가 출동하고, 이들을 영웅처럼 그렸던 영화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게 고작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꽤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했던 고대제국 페르시아의 군인들을 저주에 걸린 괴물처럼 묘사했던 영화 '300'은 심지어 21세기에 개봉했고요.


물론, 지난 20년 사이 미국 내에서도 과거의 '인디언 학살'을 반성하거나,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내면이 완벽하게 '문명화'됐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연출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이미 백인들의 '룰'에 종속된 원주민들은 '우아'한 방법으로만 저항할 수 있죠. 탐정을 고용하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백악관을 방문해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등 정말 '야만'과는 거리가 매우 먼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면, 이 영화에 나오는 백인들은 어떻습니까. 기술만 발전했을 뿐 머릿속은 매우 야만적인 사람들이죠. 지나치게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스트 버크하트'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도적'으로 악하지 않을 뿐, 생각 없고 피동적인, '우아함'보다는 '무지'에 더 가까운 인물이죠. 기차역에서 술에 취해 난투극을 벌이거나, 가족을 부양할 돈이 없어 매일 술에 절어 사는 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백인들과 그의 차이점은 딱 하나, 삼촌이 부자이고 마을의 실세라는 점뿐입니다. (현재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서구권 국가들도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과 다른 점은 딱 하나,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친 제국주의 선조들의 유산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영화 플라워킬링문의 한 장면.

아주 짧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원래 '누가 봐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 따로 글을 쓸 생각이 없었던 터라 조금만 다뤄본다는 게 결국 말이 길어졌네요.


이제 말을 맺겠습니다. 제게 있어 이 영화는 정말 야만적인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야만적이지 않은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현대인들이 머릿 속도 야만적이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미처 극장에서 보지 못한 분들도 꼭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웅의 마지막이 꼭 웅장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