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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Mar 14. 2024

가여운 것들, 뛰어난 상업영화

처음에는 예술영화인줄 알았다

영화 '가여운 것들'을 보고 왔습니다.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접하고 본 영화는 아닌지라 예술영화라고 생각하고 감상했어요. 그런데 정말 재밌는 상업영화더군요. 그것도 매우 재밌는.


제 글을 몇 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작품 해석은 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성격발달 5단계(심리성적발달 이론)'같은 얘기는 하지 않아요. 그냥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들과 편하게 감상평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가장 먼저 언급(칭찬)하고 싶은 스태프(staff)는 촬영감독과 컬러리스트입니다. 어안렌즈(초광각렌즈) 활용과 카메라 무빙&구도가 특히 인상 깊었죠.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 떠오르는 동화 같은 색감도 좋았습니다. 영화 내내 감탄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가장 우선되는 본질이 '보여짐'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인지라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가여운 것들에서 다루는 사회 문제들이 더 이상 신박하진 않은 시대죠. 소설 원작의 배경인 19세기 영국이라면 눈이 커질 정도로 신박하겠지만요. 그런 이유로 21세기에는 이미 관객이 인지하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연출할지'가 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가여운 것들은 꽤 훌륭한 작품이에요. 딱히 지적할 요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를 연기한 엠마스톤과 던컨 웨더번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 남자의 소유욕(지배욕)을 이보다 더 코믹하게 연출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남자의 소유욕(정복욕)'이 문제의 핵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결국 '사람'이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차별과 편견, 부조리는 모두 '사람'이 만들고 더 공고히 하는 주체라고 느꼈어요. 적지 않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극 중 벨라(엠마스톤)가 춤을 추는 장면을 '베스트'로 꼽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죽어가는 빈민들을 바라본 벨라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끝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못 이기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본래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을 완벽하게 컨트롤해야 '어른'이자 '지성인'으로 인정받는 사회. 그들만큼 가여운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결국 가여운 것들은 구속받는 것들이 아니라 구속하는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중반까지 예술영화에 더 가까워 보였던 '가여운 것들'이 상업영화로 보인 시점은 후반부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말로 흘러갔거든요. 이야기 자체는 결이 많이 다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2007)'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데쓰 프루프만큼 뛰어난 상업영화로 보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드윈 백스터 박사(윌렘 대포)와 맥스 맥캔들리스(라마 유세프)

영화 속 남자들이 여자를 구속하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다소 차이점은 있습니다. 벨라에게 위협이 되느냐 여부인데요. 고드윈 백스터 박사(윌렘 대포)와 맥스 맥캔들리스(라마 유세프)는 위협이 되지 않는 남자들에 속합니다. 그들도 벨라를 구속하긴 하지만 던컨 웨더번(마크 러팔로)과는 구속하는 맥락이 달라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이 두 남자는 던컨 웨더번과 달리 '성인 남성으로서' 완벽하게 사회에 녹아들 수 없는 약점(집안 배경이나 신체적 특징 등)을 지니고 있더군요. 만약 이들이 던컨 웨더번 같은 (전형적인) 성인 남성이었더라도 같은 모습을 보였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회에서 '남성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위치도, 상황도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최후에 벨라가 선택한 남자들도 이 두 사람이었죠. 역설적으로 벨라에게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한 남자였던 겁니다.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려 했지만 일정 부분 피할 수는 없었네요. 저는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 자체로도 꽤 만족했습니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 안 본 분들도 배려하고 싶습니다.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냐" 묻는다면 제 눈엔 그렇습니다. 굳이 아이맥스 상영관까지 찾으실 필요는 없겠지만 가급적 영화관에서 보시길 추천해요.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장점으로 언급했겠지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TV 화면으로 보기에는 미장센이 아까운 작품입니다.


한 줄 소감 : 이토록 재밌는 상업영화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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