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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May 23. 2024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매드맥스, 과열돼도 좋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엔진소리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수작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와, 이거 어떡하지.. 살짝 고민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정말 재밌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남긴 채 글을 맺고 싶습니다. 최근 개봉한 조지밀러 감독의 신작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얘기입니다. 영화 시작 전 장엄하게 울리는 (매우 익숙한) 음악과 묵직한 엔진소리만으로도 이미 만족해 버렸거든요. 그래도 이왕 글을 쓰는 거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 보겠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저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관객이 전작인 '분노의 도로'보다 재밌는지, 혹은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가장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전 개인적으로 '분노의 도로'가 더 재밌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작품의 다른 점은 많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시간적 영역이 조금 앞서 있을 뿐 분위기나 설정은 대동소이합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이미 제목부터 '사가'이니까요.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가 맡은 '퓨리오사'의 행적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맥스'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죠. 전작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눈빛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신작에서 '퓨리오사'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도 눈빛이 강렬한 배우입니다. 그런 이유로 배우가 교체됐음에도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영리함과 근성이 엿보이는 연기도 만족스러웠고요.


바이커 군단의 폭군 '디멘투스' 역할을 맡은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디멘투스라는 캐릭터도 전작의 빌런 '임모탄 조'와 차별화를 둔, 상반되는 이미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임모탄과 디멘투스를 대조하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려는 이유가 달라 보입니다. 임모탄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즐기기에 권력의 유지를 우선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디멘투스는 자극(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로 보이거든요. 디멘투스는 영화 내내 지루함과 싸우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실제로 가스농장을 장악한 뒤에도 결국에는 추가로 시타델을 침공하려 했죠. 임모탄이 나름 세뇌를 통한 '안정'을 추구한다면 디멘투스는 공포심을 이용해 끝없는 '혼란' 속에서만 생존해야 할 이유를 찾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나무의 양분이 되어 축축한 땅에 죽을 때까지 누워있어야 하는 결말은 가장 잔인한 형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멘투스가 임모탄보다 표면적으로는 더 뜨겁고 감정이 풍부한 '인간'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내면은 임모탄보다 차가운 인물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디멘투스는 인류 멸망 후 인간성을 거의 잃어버렸거나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반대로 임모탄은 매우 차갑고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의외로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나 전투에 앞서 전략을 결정하는 사고구조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에 가깝죠. 아마 전직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성도 반영된 결과겠지만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매드맥스 시리즈에서 왜 갱단이나 일부 조직이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광적으로 집착하는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이유보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한 결과로 보이는데요.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육중한 트럭이 심장을 울리는듯한 엔진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액션 등은 팬들이 매드맥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니까요.


이는 특히 '남성 관객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어느 정도 중화시키는 요소는 (전작인 분노의 도로와 신작인 퓨리오사에 한해서) 핵심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있는 관객도 매드맥스가 재밌는 영화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적지 않을까요. 영화를 잘(재밌게) 만들면 그런 요소는 부차적일 뿐입니다. "PC주의를 신봉하는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도 잘 만든 영화 앞에서는 무력하죠. 최근 디즈니가 본보기로 매드맥스를 참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일 겁니다.


또 칭찬하고 싶은 점은 촬영인데요. 먼저 사람들이 재밌게 보는 영상의 특성에 대해 살짝 설명하자면 평소 자신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그럴 기회가 적은) 앵글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도하게 아웃포커스된 장면이나 좁은 화각으로 특정 피사체를 임팩트 있게 담은 장면, 먼 거리에 있는 인물을 초망원 렌즈로 촬영한 장면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구도이기에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꼭 전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매 장면의 앵글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와, 이걸 어떻게 촬영했을까'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 정도였어요. 참고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사이먼 더간'이 촬영감독을 맡았습니다. 주요 필모그래피는 '아이로봇(2004)', '언더월드 2 에볼루션(2006)', '미이라3(2008)', '300: 제국의 부활(2014)',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 등이 있습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매우 만족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언급해야겠습니다. 우선 너무 많은 정보를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한 점이 아쉽습니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보라서 더 그렇습니다.


영화 후반부 모든 걸 잃은 디멘투스는 오롯이 '말'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이때 지루함을 느꼈을 관객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멘투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충분히 보여줬음에도 그렇게 긴 대사가 필요했는지, 살짝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 퓨리오사의 한쪽 팔이 왜 잘렸는지를 알게 돼서 좋았지만, (임모탄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자신이 팔을 직접 잘랐다는 설정', 그리고 의외로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내용에 한해서는) 퓨리오사가 임모탄에게 엄청난 복수심이나 증오심을 가질 계기가 딱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전작인 '분노의 도로'에서 이어오던 감정선을 살짝 뒤트는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작에서 퓨리오사가 임모탄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의수도 함께 잃게 되는 장면은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기계 부품'같은 생을 살아오다가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모티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퓨리오사의 (직접적인) 복수심이나 증오심의 대상은 임모탄이 아닌 디멘투스였다니, 게다가 조금 관대하게 바라보면 임모탄은 오히려 복수할 기회를 제공해 준 인물이었다니, 조금은 감정선이 복잡해지는 지점입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다만, 두 편의 영화에서 퓨리오사의 행적을 찬찬히 뜯어보면 '개인적 복수' 외에도 '대의적으로 추구'하는 나름의 이상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이미 '그런 세계'에서 멀어져 버렸지만 남은 인류 중 선량한 생존자, 혹은 피해자들만이라도 '구원'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아마 그건 타의로 인해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에 일정 부분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퓨리오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인물, 그런 세계를 파괴하는 인물디멘투스뿐만 아니라 임모탄도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임모탄에게 증오심을 갖는 것도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추천 여부는 '강력 추천'입니다. '극장에 가서 봐야 할 영화'냐고 묻는다면 전 개인적으로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심장을 울리는듯한 엔진소리와 스펙터클한 활극을 대형 스크린&스피커를 통해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한 줄 소감 : 잔혹한 질주가 선사하는 황홀한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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