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며 돈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옵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직장 생활 2년 차를 넘어가며 결혼까지 하고 나니 매달 들어오는 돈의 무게가 정말 무겁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돈 관리는 제가 합니다. 돈 관리를 오래 해오기도 했고 또 그런 걸 알아보고 정리하는걸 꽤나 좋아하기에 자연스레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관리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래야 돈이 헛으로 새지 않고 또 아꼈을 때 오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월급의 70%를 공동 재산으로 분류합니다. 남은 30%는 개인의 몫입니다. 이건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쭉 생각해 온 시스템인데, 오죽하면 안나랑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이 점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결혼해서 함께하게 된다면 개인 수익의 70%는 공동 재산으로 가정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에 쓰고 남는 건 저축하자, 30%는 각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으로 두는 거다. 이렇게 하지 않고 모두 공동 재산으로 묶어버리면 돈을 더 버는 동기부여가 없지 않냐. 세금 100%인 국가, 뭐 예를 들면 북한과 다를게 뭐냐. 개인 재산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역사적 기록을 봐라. 더 버는 만큼 더 가정에 더 기여하고, 더 버는 만큼 개인 용돈도 더 갖는 거다.'
그래서 매달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는 각자 그 달에 번 개인 총수입의 70%를 모아 다음 달 예산으로 편성합니다. 그리고 그전 달에 쓴 지출 내역 리포트를 안나랑 공유해 주고 지금까지 매달 각자가 얼마를 기여했고 얼마가 모였는지 또 어떤 달에 얼마를 썼는지도 다 보여줍니다. 30% 개인 몫은 서로가 알아서 관리합니다. 저 같은 경우, 월급의 10%는 다달이 용돈, 5%는 예상 못하게 돈 나갈 곳을 위해 모아두고, 5%는 부모님 용돈 (7년 전 약속한 대로.. 계약서도 있습니다..!), 5%는 여행 (여행 경비는 공동 재산으로 지출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5%는 개인 저축입니다 - 마음껏 주식도 굴리고 채권도 하고 저축도 하는 그런 용도. 안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제 연봉과 안나 연봉의 총합은 60000 파운드, 현재 환율로 1억 2백만 원 정도 됩니다. 거기에 제가 이번에 팀 개편과 사무실 이전으로 이사 비용 7천 파운드를 받았으니 올해 7월부터 내년 7월까지 1년간 우리가 벌어들일 예상 총수입은 세전 약 67000파운드, 약 1억 1천4백만 원 정도입니다. 여기서 이런저런 세금으로 한 15% 정도 때이니, 세후 수입은 약 9천7백만 원 정도가 됩니다. 공용 자금 70%를 고려하면 약 6천8백만 원 정도가 공용자금입니다. 런던 외각,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어디쯤 투룸에 살며 월세가 다달이 1200파운드이니 1년 월세는 한화로 약 2천5백만 원 정도, 다달이 식비며 교통비 공과금 등등으로 나가는 돈이 약 900 운드 (한화 약 150만 원)이니 1년 지출은 여행을 제외하고 약 1천8백만 원 정도 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1년에 저축하게 될 돈은 약 2천4백만 원 정도입니다. 대게 이렇게 공동 저축한 돈은 예금이자가 높은 통장에 안전하게 넣어두니 돈이 조금 더 붙습니다.
< 2023-2024 예상 1년 총수입 및 지출 >
은표 안나 합계 연봉: 60000 파운드 (약 한화 1억 2백만 원)
총 세전 수입: 67000 파운드 (약 한화 1억 1천4백만 원)
총 세후 수입: 57000 파운드 (약 한화 9천7백만 원)
총 세후 수입에서 공용 자금: 57000 파운드 × 0.7 = 39000 파운드 (약 한화 6천8백만 원)
1년 월세: 12 x 1200 파운드 = 14400 파운드 (약 한화 2천5백만 원)
1년 기타 지출 (식비, 교통비, 공과금 등등): 12 x 900 파운드 = 10800 파운드 (약 한화 1천8백만 원)
총 세후 수입 - 총지출 = 총 저축 = 13800 파운드 (약 한화 2천5백만 원)
지금까지 각자 모아 둔 돈: 합쳐서 약 5천만 원
내년 9월, 10월쯤 제네바로 이사를 갈 테고, 1년 정도 살아보고 또 지역도 구석구석 알아보고 국경 넘어 프랑스에 집을 살 테니 2025년 9월쯤 집을 사지 싶습니다. 당연히 생각도 많이 하고 조사도 많이 한 뒤 대출 끼고 집을 사겠고, 어찌어찌 큰 문제가 없다면 사실 이 정도 수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비록 아낀다고 한 달에 외식은 두세 번 정도에 그치고 늘 장 볼 때 선뜻 비싼 소고기를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거야 뭐 그렇기 때문에 가끔 먹는 소고기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홍대 반지한 1.5평 바퀴벌레 나오는 하숙집이나 월 18만 원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비하면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주위에 저보다 월등히 많이 벌고 지출에 주저함이 없는 친구들을 볼 때면 솔직히 좀 부럽습니다. 정말 사람 좋은 스위스 친구 커플이 있는데, 둘 다 우리보다 3살 정도 어림에도 둘이 버는 수입은 우리 수입의 두 배가 넘습니다. 여자애는 투자 회사에서 일하고 남자에는 Meta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워낙 돈을 많이 버는 곳이기도 하고 둘 다 자기 일을 좋아하고 매우 잘하기도 합니다. 성격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좋은 사람들이고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런던 중심에 멋진 아파트에서 사는 이 젊은 커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한 시간 기차를 타고 경기도 외각쯤에 있는 작고 오래된 투룸에 돌아오면 마음이 조금 쓰립니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더없이 편한 돈. 언젠가 저도 이 스위스 친구들처럼 곳간이 아주 넉넉해지면 주위 좋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주저 없이 '아 마, 내가 살게'라고 베풀어 주고 싶습니다. 저녁으로 마트 소고기도 조금 더 자주 사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