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야매 연구원입니다.
화장품 연구원이라고는 하나 화장품에 크게 관심도 없고 화장품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화장품을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얼결에 화장품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일하고 있는, 그런 야매 연구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운만으로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건 아닙니다. 화장품 연구개발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있었고 또 화장품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회사에 보탬이 되고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설득해 냈기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회사에 나름 적지 않은 보탬이 되고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품을 잘 모르면서 어떻게 화장품 연구원으로 일하고 또 사내에서 인정받으며 일을 하고 있나. 그건 제가 썩 괜찮은 '소통 능력'과 '남을 설득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직장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눈과 좋은 소통 능력, 나아가 남을 설득하는 능력은 큰 빛을 발합니다. 부족한 지식이야 필요할 때 찾아내거나 지식이 풍부한 동료에게 배우면 됩니다.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게 하니 실적이 좋고,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게 끔 말을 하니 평판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진짜 연구원'들을 동경합니다. 소통 능력이 좀 부족하고 시야가 좁아 본인의 연구 분야 밖에 모르더라도, 깊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항상 심도 있고 정확한 대답을 주는 그런 진짜 연구원들이 제게는 정말 멋진 사람들입니다. 본인의 연구 분야에 열정과 애정이 있고 자발적으로 늘 그 분야를 탐구해 깊이가 있는 사람들. 야매 연구원이라고는 하나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한 제게 그들은 '진짜 과학자'입니다. 스스로 제 호칭에 떳떳하지 못하니, 어디 가서 화장품 연구원이라고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화장품 연구원이지만 화장품에 대해 아주 조금 아는 것뿐이라고' 저를 낮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짜 연구원과 야매 연구원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연구원이라고 다 같은 연구원이 아니라고.
연구원이지만 지식보다 말빨이 더 뛰어나고 제품보다 사람의 심리를 더 잘 아는 야매 연구원. 조금 더 떳떳하게 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직책은 없을지 요즘 틈틈이 다른 기회를 찾아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