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
역사는 개인의 힘이 강해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할 지식 3가지가 있습니다.
1. 마그나 카르타 사건
2. 개신교
3. 명예혁명
3가지 사건은 모두 개인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1.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사건은 헌법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215년, 귀족들은 국왕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국왕이 강제로 세금을 물고 재산을 압수했기 때문이죠. 이후 귀족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문서를 하나 작성합니다.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문서였습니다. 그 문서의 이름이 바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영국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개인'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2. 개신교
16세기, 가톨릭의 부패가 심각해졌습니다. 부패는 면죄부를 팔며 정점으로 달렸죠. 면죄부란 돈으로 죄를 지울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런 만행을 참을 수 없었던 마르틴 루터는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기독교의 한 분파가 개신교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주요 차이는 이렇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반드시 교회와 신자를 통해야만 하느님과 소통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누구나 성경을 통해 하느님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즉, '개인'의 힘이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3. 명예혁명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혁명, 한 번쯤 들어보셨죠? 의회(귀족) vs 왕의 싸움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하며 튜더 왕조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제임스는 스코틀랜드의 왕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정치 상황에 무지했습니다. 마그나 카르타 이후로 의회 정치가 발달한 영국에서 왕권신수설을 신봉했죠. 그 뒤를 이은 찰스 1세도 마찬가지였어요. 심지어 이들은 청교도를 박해했는데요. 의회의 상당수가 청교도였기 때문에 반발심이 더 증가했습니다. 영국은 당시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개인의 힘이 꽤 강해져 있던 거죠. 결국 의회는 개신교 신자였던 국왕의 딸 메리 2세를 그의 남편과 함께 공동왕으로 만듭니다. 당시 왕이었던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도주했고 덕분에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두 왕은 의회에서 제정한 권리장전을 승인했고 혁명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끝나게 됩니다. 이후 영국엔 입헌군주제가 수립되며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만들어집니다. 개인의 힘이 더 강화된 것입니다.
4. 결론
영국에는 유독 개인의 힘이 강화될만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에는 좀 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발전한 기술이라든가 식민지를 통해 얻어낸 자원 등이 있죠. 하지만 저는 이런 요소들이 부수적인 요소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힘이 강해지지 않았다면 기술의 발전도 사람들의 의식 수준도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