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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영 Jul 15. 2022

거꾸로 해도 스위스

JUNE, 2011 / < GQ KOREA>

스위스는 그들이 이룩한 최대의 문명으로부터 자동차 출입도 금지시킬 만큼의 반문명이자 자연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회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취리히에서 체르마트를 거쳐 루체른까지, 스위스를 탐구했다.


취리히-질발트 자연 공원

“1 후면  거예요.” 트램 정류장의 전광판을 가리키면서, 스위스 관광청 직원이 일렀다. “거의  왔어하면 10 이상 걸리는 서울의 시간 감각을 유지했더라면 가방에서 책을 꺼냈을지도 모른다. 1분을 기다리면서는 정거장을 둘러봤다. 백인 여자  명과 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빼곤   선글라스를 썼다. 누가 에밀 루더의 나라 아니랄까 , 장식성이 배제된 간결하고 정확한 비례의 광고판은 읽을  없는 언어였다. 읽을거리로서, 정류장 옆의 간판이 보였다. ‘Coop’이라는 슈퍼마켓 체인이었다. 단음이 분명한 철자에도 불구하고, ‘이라고 읽으면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적어도 2외국어가 독일어가 아니었단 면죄부는 있다. 환승 대기시간까지 합쳐 장장 스무 시간 만에 도착한 이곳은 취리히다. 트램에 오르고, 다시 그가 말했다. “저희가  준비해놨어요. 날씨까지도요.” 화창한 날씨라도 읽어보겠다고 차창 밖을 보는데 호수가 먼저 보이는 이곳, 취리히다.

취리히 인구의 44퍼센트는 차가 없다. 분 단위로 대령하는 트램과 열차는 스위스의 시간 감각을 반영한다. 정확하다. 쾌적하고 빠르게, 한 달에 75프랑의 저렴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으므로, 자동차를 번거로운 교통수단으로 보는 게 옳을 지경이다. 거리의 차들 가운데 서민적인 차는 없었다. 자동차를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으로 보는 사람들만이 구입하는 듯했다. 트램은 마치 ‘자가용’처럼, 스스로 버튼을 누르고 내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막상 취리히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백조를 쳐다보느라 호수에 왜 왔는지도 잊었다. 우아하고 싶어서, 백조를 따라 다리를 건넜다. 뒤로 쭉 뻗은 백조의 까만 다리가 보였다. 그만큼 호수가 맑았다. “내년과 내후년이 스위스 물의 해예요. 여름에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죠.” 취리히의 안내자 엘리자베스의 설명이다. 백조가 긴 목을 구부려 머리를 수면 아래로 처박았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은 사람들도 마셔요.” 백조는 어디에서 자는가가 궁금해진 스위스의 첫날 밤, 앰버서더 호텔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백조는 몰라도, 다른 새들의 안식처는 알았다. 중국의 798이나 한국의 문래동처럼, 공장 지대를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킨 취리히 웨스트에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곳에, 기이하게도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다. 거대한 쓰레기 소각장 굴뚝 위에 새들이 와서 살도록 했다. 굴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새들이 안녕한지를 살피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쓰레기 처리시설의 완벽함에 대한 효과적인 증명이고 광고였다. 듣기론, 백조 역시, 그들이 취리히 호수를 찾은 것이라기 보단, 그들을 취리히 호수에 풀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는 자연조차도 ‘자연스럽게’ 제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꺼림칙하다는 뜻이 아니다. 1981년, 인류가 아마존에 손댄 이래, 지구 상에 인간이 통제하지 않는 자연은 없다. 다만, 자연은 인류가 허들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상상치도 못할 재앙으로 응답했다. 지속 가능한 자연환경 이외에,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판단을, 스위스는 내린 듯했다. 스위스의 놀라움은, 만들어진 자연의 기만을 이미 훌쩍 넘어선 ‘만들어진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달성했다는 데 있었다.

알다시피, 스위스는 의약품, 시계, 정밀 기계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 은행, 증권 따위의 현대사회가 발명한 신기루를 이용한 금융 산업, 직접 민주주의, 완벽에 가까운 시간 개념을 이룩했다. 말하자면,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완전한 문명사회와의 등가.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라는 꼭짓점 뒤에, 스위스는 반성을 시작했다. 실로 감동적인 구석이 있을 만큼 철저하고, 미래지향적이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전망으로서. 그러나 스위스의 전망은 스위스가 얼마나 소심한 나라인가를 반증하는 예로 볼 수도 있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특허 법만을 지적한 채, 개발도상국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유럽 국가의 리스트에서 스위스를 조심스럽게 제외시켰다. 스위스는 용병으로는 나설지언정 참전용사로는 나서지 않는 영구 중립국이다. 걷어차지는 않지만, 앞서서 사다리를 놓아주지도 않는다. 그들의 전망에는 전 세계적 공존에 대한 항목이 빠졌다. 부러워할 수는 있어도 존경할 수는 없는 문명의 최대치 앞에서, 관광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밤이 깊어 다시 취리히 호수에 나왔을 때, 백조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취리히에서 열차로 10분 거리, 문명의 첨단 혹은 만들어진 자연을 반성하는 문명을 빠져나오는 길은 짧았다. 질발트 자연공원은 ‘자연공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곳이었다. 그곳 전체 면적의 50퍼센트는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나무가 쓰러지면 버섯이 피기를 기다린다. 말끔하고 번듯하게 나무가 일자로 서 있어야 아름답다고 보는 인간적인 시각을 버린 것이다. “주민 투표를 통해 이곳을 자연공원으로 보존하자는 안이 통과됐어요.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인간성 중 하나라는 데 합의한 거죠.” 질발트 자연공원의 안내자는 그렇게 말한 뒤, 여백을 두었다. 인간성은 침묵의 시간만큼 각자 고민하면서 달성된다는 듯이.

공원의 나머지 50퍼센트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자연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사용했다. 크게 보면, 비버와 수달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최적의 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과 나들이와 모임의 용도로 사용하는 외부 공간, 숲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나눌 수 있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쉽게 볼 수 없다는 수달이 나타나자 그곳을 찾은 아이들 사이에선 일대 난리가 났다. 착한 아이들의 맑은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만, 개구진 아이들이 일으키는 바람을 맞는 것도 좋다. 수중의 수달을 관찰할 수 있게 유리가 설치된 지하로, 또 뭍으로 나온 수달을 볼 수 있는 야외로,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아이들만 쳐다보다가,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숲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아이들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심원한 메시지가 있었다. 박물관은 스위스, 즉 자기 자신이 숲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독일이 유태인 박물관을 만든 것과 같은 사례가 떠올랐다. 굳이 밝혀서 좋을 일도 아니지만,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없다는 자각. 나무를 자르는 법부터, 그에 사용되는 사소한 도구, 운반 과정의 세부사항까지를 밝혀놓았다. 산업혁명을 거친 여느 나라처럼 스위스도 17세기 도시 건설에서 숲을 초토화시켰다. 그 허허벌판의 참담함을 새기고 나 면, 자연사 박물관이 보여주는 숲의 현재에 이르고, 비로소 명쾌해진다. 개발주의자와 보존주의자의 논쟁을 보여주는 비디오는 얼마나 정치적이고 직접적인가? 숲에 사는 동물들의 발자국과 똥까지 보여주려는 시도는 얼마나 귀여운 배려인가? 버섯과 나무를 동지처럼 보고 그들의 건강은 어떤지, 무슨 냄새가 나고, 나이가 들수록 어떤 질감을 나타내는지를 알게 해 주려는 뜻은 얼마나 애정 어린 이해인가? 지식에 경험을 더해주려는 스위스 어른들의 ‘지혜’가 보였다. 질발트 자연공원을 두루 답사하면서 마주친 곰 세 마리 가족과 당근 먹는 마멋, 헤엄치는 수달 같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자연도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려는 이 구애보다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질발트 공원 안내자의 말처럼, 인간성은 이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얻는 방법을 배웠을 때 획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 말이다.

질발트 자연공원-체르마트

스위스 여행은 귀가 아프면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반도 국가이자 분단국가를 떠나는 모든 여행은 귀가 아프면서 시작되고 또 끝난다. 통상적으로 고막은 안팎으로 알맞게 가해지는 압력을 통해 균형을 이룬다. 여행은 자신의 집이 속한 지역사회에 적응된 일상과는 사뭇 다른 압력을 받는 일이고,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귀가 아파온다는 것은 새로운 적응에 대한 전조이자 요구다.

스위스는 한국처럼 산지가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다. 하지만 알프스의 최고봉은 몽블랑이고 프랑스에 있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스위스가 알프스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큰 것도 아니다. 역으로 스위스에서 알프스의 비중이 높다. 스위스는 일찌감치, 거대한 입을 벌린 자연을, 하인이 아닌 동료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문명사회 최선의 형태인 고도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해왔다. 이제 스위스에 간다는 것은 알프스에 간다는 것과 동의어다. 스위스에 가면 귀가 아프다는 ‘상징적인’ 통증은 그런 것이다. 상징적인 통증을 유발하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융프라우요흐’산이다. 한국에서 알프스 답사를 위해 떠나는 목적지는 특히나 그랬다. 스위스의 자연유산에서 가지는 대표성이 주효하긴 했지만, 일종의 ‘쏠림 현상’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융프라우요흐에서 멈춘 스위스 여행, 혹은 다른 사람이 겪은 스위스와는 다른 경험을 전개시켜볼 장소, 체르마트라면 썩 괜찮은 선택이지 싶다.

체르마트는 ‘마터호른’을 품고 있다. 4천4백78미터, 특유의 뾰족 한 봉우리로 유명한 이 산은 알프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정복되었다는 완고한 배경을 지녔다. 1865년이었다. 마터호른의 공격적인 위용은 파라마운트 사와 토블론 초콜릿 등으로 확대 재생산돼서, 그것의 실제 존재보다도 가상의 이미지로 더 유명하다. 마터호른을 보고 온 사람보다 마터호른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달력 사진’을 보러 간다는 스위스 관광에 대한 비아냥도 마찬가지다. 정작 각자에게 달력 사진이라는 이미지만 있을 뿐 그것의 실체를 마주하고 경험해본 사람은 흔치 않다. 또한 그들이 막상 마터호른 앞에 섰을 때 달력 사진을 찍지 않을 확률 역시 매우 적다.

취리히에서 비습으로, 비습에서 체르마트로, 열차 한 번을 갈아타고 세 시간가량 가야 하는 여정이다.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려오는 옥색의 계곡물을 거슬러 기차로 간다. 그저 잠으로 때우기보단, ‘태쉬’ 역부터 눈여겨보면 좋겠다. 여기서부터는 공사 등의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차량 이외에는 전기자동차만 출입할 수 있다. 주민 투표로 결정된 사항이며, 환경 보전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스위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난처한 일이었을 결정에 합의할 수 있는 힘은 ‘대통합’ 따위의 교조가 아니라, 정당한 목적에 있다는 걸, 체르마트 같은 촌에서 자란 아이들도 배울 것이다.

체르마트 역으로 마중 나온 알펜 블릭 호텔의 직원 역시 전기자동차를 타고 있었다. 앞뒤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귀여운 모양. 나중에 체르마트에서 전기자동차를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스팀보의 대표 임보덴 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말로는 그 모양에는 ‘룩킹 스페셜’ 이외에 어떤 의도도 없다고 했다. 그 자신이 작업복을 입었고, 거창한 환경적인 비전은 늘어놓지 않았다. 환경에 대해 말로 한다는 것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말을 빌리자면, 건축에 대해 무용을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호텔로 출발했다. 전기 자동차의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리한나의 것이었다. 천혜의 자연을 가로지르며 ‘S&M’을 들었다.

체르마트역이 약 1천6백 미터 지점, 동쪽 면의 뾰족한 마터호른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고(이탈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의 남쪽 면이 보인다), 알프스의 4천 미터 이상 봉우리 29개 가운데 절반을 볼 수 있다는 글래시어 파라다이스까지가 3천8백83미터다. 산악 열차를 타는 대신, 마터호른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는 쪽을 택했다. 다른 산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의 제의미란 이것인가?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케이블카였지만, 어느 쪽도 쾌적하게 있기는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케이블카가 몹시 불편했다는 이야기라기보다 사람을 상승과 하강의 중간, 불안에 놓는다는 점 말이다. 올라온 만큼을 돌아보면 자꾸 안 좋은 상상으로 돌진했고, 남은 거리를 쳐다보면 강건한 마터호른으로부터 충격을 받고 싶은 기대감이 떠올랐다. 둘 다 탈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사이, 긴장과 기대 사이에서 고양시켰다가 또 내려놓는다.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자마자 난간에 달려들어 마구 셔터를 눌렀던 일은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혹시 자신이 레일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혔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했다. 마터호른은 콘돔 광고에도 등장한 바 있다. 그 공격적인 모양이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서 바라본 마터호른은 경건했다. 한국으로 치면 그 아래 신당이 만들어졌어도 수백 개는 만들어졌을 만큼. 실제로 체르마트를 비롯한 알프스 산악 지대 주민들의 가톨릭에 대한 신앙심은 대단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만어, 그리고 공통어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 대부분 영어도 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같은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던 탓이다. 자연환경은 척박했으며, 산악지대의 특성상 아주 작은 단위의 마을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마터호른은 적이면서 무기였을 것이다. 그것이 멀리서 볼 때는 공격적인 인상을 풍기고,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경건한 인상을 보여주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주변국이 적만은 아니다. 마터호른의 경건함은 친환경주의적 가치에 의해 극대화되고 있다.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의 모든 시설에서 사용하는 물은 자체 정화조를 만들어 그곳에서 처리한다. 마시는 물은 따로 정화하는 예민한 시스템이다. 전기는 태양열판으로 자가발전한다. 이 또한 발전기로 돌리는 열과 환풍 시스템을 통해 내부에 온기를 공급하는 열을 따로 관리한다. 태양열 발전은 아직 투자비 대비 합리적인 열생산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다른 열판을 설계하고 설치해야 하는 막대한 건축비도 그렇지만, 유지관리비는 더 든다고 한다. 50 메가와트 이상의 대규모 발전이 아닐 경우, 그러니까 에너지 회사 차원의 생산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스위스를 일컬어 “세계 최고의 환경 사치”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기꺼이 스위스는 감당한다. 마터호른을 좀 더 질 높은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있겠지만, 스위스에서 환경에 비용을 들인다는 건 그 실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위협보단 덜 위험하단 의미 같다.

알프스가 녹고 있다. 스위스 관광청 소속으로 현지 안내를 해준 스벤의 말에 따르면, 매년 20센티미터씩 만년설의 고도가 올라가고 있다. 스위스 과학아카데미는, 2050년이면 알프스의 빙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스위스는 늘 위협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온, 또한 완벽하게 관리되는 수로와 제설 시스템에서 보듯, 모든 위협을 전략적으로 완전히 장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다. 스위스는 한 발 앞서, 환경에 대해서도 같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친환경은 의무나 책임이라기보단 본능적인 방어에 가까웠다.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의 얼음 동굴을 둘러본 뒤, 양해를 구하고 현재 공사 중인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계단 위에 눈이 쌓여있는 다소 위험한 공간이었는데도, 마치 아케이드 게임하듯이 무의식적으로 다음 ‘스테이지’를 향했다. 정상에 닿겠다는 일념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바뀌는 알프스의 풍경이 너무 이채로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10분 정도 보고 오자는 약속은 30분이 다 되어갔다. 마침내 전망대 정상에 올랐다. 저 멀리 한 봉우리로 등정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 위로는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무리도 있었다.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와 달리 안전바 하나 없는 봉우리였다. 저긴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스벤이 답했다. “저기가 제일 안전한 봉우리야.” 제임스 설터는 <어젯밤>에서 썼다. “그가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안정적인 것 같은 사람이라도 심각한 위기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스위스의 위기는 스위스의 위기이기만 할 것인가. 그 봉우리의 이름은 브라이튼 호른이었고, 나중에 알아본 바로 높이는 4천1백64미터였다.

체르마트-루체른

체르마트를 떠나 다소 정석적인 관광 코스에 닿았다. 루체른과 필라투스 산을 둘러보는 일정. 필라투스 산처럼 도시와 이어져 있는 산은 그 자체로 환경에 대한 하나의 탑 같은 역할을 한다. 기념하고, 기억할 만한 거대한 뭔가가 있다는 것. 익숙해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만약 없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달라졌을 것. 필라투스 산은 루체른 역에서 트램으로 채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루체른은 스위스의 도시 관광을 대표하는 곳이다. 장 누벨이 설계한 KKL 센터, 르네상스 시대의 장엄한 건축물인 호프 교회,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무세크벽, 피카소에게 직접 헌정받는 등의 대단한 소장작을 자랑하는 안젤라 로젠가르트 여사의 루체른 장미정원 컬렉션. 관광객의 방문 목록은 한정 없이 길지만, 지나칠 수도 없고 찾아가 보고도 싶었던 건 카펠교였다. 남대문이 전소되었을 때, 그 비교급으로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등장한 불명예스러운 이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 다리였던 이곳은 1993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체 285미터 가운데 절반이 불탔다. 다리의 천장에 붙어 있던 112매의 판화 그림도 함께였다. 지금의 카펠교는 복원한 모습이다. 불에 타서 없어진 판화는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다리도 타다가 남은 부분부터 이어서 완성했다. 화재도 역사라면서.

밤이 되자 카펠교 주변은 야경을 보기 위해 카페와 술집에 모여든 사람들로 즐비했다. 퐁듀를 먹고, 알프호른 연주와 요들을 감상하는 구시가의 레스토랑 슈타트켈러에서는 아주 고른 분포로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날”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각자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사고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관광객들은 전부 잠정적인 카펠교 방화 용의자들이다, 하는 농담까지 생각났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머물렀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장소의 예의는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스위스는 관광지 ’라는 인식 속에서 그들 자신이 피곤하게 ‘위협’에 대응하고, ‘자립’에 몰두하는 것은, 정치적인 자세라기보단 스위스 사람들의 정신에 새겨진 숙명 같았다. 수많은 여행자가 다녀가지만, 스위스는 그저 그들 자신의 일을 한다. 그것이 관광객을 위한 카펠교 복원이 아니라 그들의 정당한 역사를 위한 카펠교 복원의 의미였다.

스위스는 다양한 문화권이 섞여 있는, 그래서 중구난방의 영향력 아래 있는, ‘스위스적인 것’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제노 포브스 가이드-스위스>에서 빌 풀먼은 말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하도 제각각이라, ‘이것이 스위스인의 전형이다’하고 딱 꼬집어 말하기도 쉽지 않다. 스위스 도시에서는 스위스 프랑을 받고 뻐꾸기시계를 파는데, 이것은 관광객들이 찾기 때문일 뿐, 이 시계가 스위스인의 취향에 맞기 때문이 아니다. 뻐꾸기시계는 원래 독일 남부 ‘슈바르츠발트’에서 온 것이며, 스위스 사람들의 취향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조잡한 물건이다. 스위스 군인들이 너나없이 유명한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칼은 기념품 가게 진열장의 소위 ‘스위스 칼’과는 전혀 다르다.”

스위스는 어디에 있을까? 필라투스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잘생긴 바위들이 스위스 같았다. 2천1백 미터의 정상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급한 경사로 만들어졌다는 등산 열차를 타고 내려올 때는 이러한 대담한 기술이 스위스라고 생각했다. 필라투스 산에 입장할 때 나눠준 야구 모자를 쓰자 익명의 관광객이 된 기분이었고, 이것도 스위스라고 생각했다. 어디에나 스위스는 있었지만, 스위스는 그것을 언제든 손에 쥘 수 있고, 정의할 수 있는 확실한 뭔가로 만들고자 했다. 친환경에 대한 그들의 진보적인 생각은 사람들에게 구축된 스위스의 이미지, 그다음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을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1백 년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나라는 세계 어느 누구보다도 스위스인지 모른다. 종속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일 수 있었던 세기. 친환경은 그다음 세기를 말한다. 스위스는 좀 더 자기 자신이고 싶은 것이다.

사진|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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