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유럽에 오기 전에는 막연히 그런 동경 같은 게 있었다.
세련된 예술 학교 강의실에서 다 같이 맥북을 펴놓고 화려한 이미지가 걸린 무드보드를 보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그런 수업. 열심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모두가 흥미로운 얼굴로 박수를 쳐주고, 시크해 보이는 서양인 교수가 조용히 엄지를 추켜올려주는.. 뭐 그런 드라마에서 볼듯한 환상말이다.
현실은 한국에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산 저렴한 델 노트북, 그리고 아뜰리에의 낡은 복사기로 뽑은 잉크가 여기저기 번져있는 레퍼런스 이미지 등 내 상상 속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단 한 가지, 교수들과의 열띤 토론만큼은 내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디자인 아뜰리에 수업은 이런 식이었다. 학년별로 프로젝트가 (주로 1년에 3-4개 정도의 아뜰리에 프로젝트가 있다) 주어지면 학생들은 각자 작업을 시작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뜰리에에서 교수와 만나 작업에 대한 과정을 공유해야 한다. 여러 가지 준비한 레퍼런스들과 진행된 작업들을 보여주면 교수들은 매의 눈으로 디테일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는 왜 이 폰트를 썼니?'
'이 컬러를 선택한 이유는 뭐야?'
'이 디자인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니?'
내가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바로 이 '왜'라는 질문이었다. 프랑스에서 보자르에 다닐 때도, 벨기에에서 디자인을 공부할 때도, 이곳 교수들은 한결같이 그놈의 '왜' 타령이었다.
아직 이들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초반의 나는, 가끔씩 '예뻐서요' 라던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 한번 따라 써봤어요' 식의 망언(?)을 내뱉고는 했다. 그럴 때면 교수들에게 온갖 험한 말을 듣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디자인이라는 게 결국엔 사람들이 예쁘게 느끼고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만드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잘 못 된 건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발렁스에서 처음 예술을 공부했을 때처럼, 나는 한동안 생채기를 겪어야 했다. 프랑스와 다르지 않게 이곳에서도 교수들은 굉장히 권위적이었고, 불어가 완벽하지 않은 내가 작업에 대해 설명하며 어버버거릴 때마다 그들의 인내심은 바닥나는 듯 보였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걸까? 그럼에도 교수들에게 이쁨 받고 싶었고, 말을 잘 들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교수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던져주는 피드백을 전부 반영하고 맞춰가며 작업을 제출했지만, 결국 받은 점수는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새롭게 시작한 학교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고 싶었지만 밤을 새 가며 준비한 작업이 그저 그런 점수를 받게 되자 오히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잃을게 없어지자 마음은 대담해졌고 교수들 앞에서 눈치만 살피며 어버버 거리던 나에게 진저리가 났다.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나는 작업에 대한 나의 온갖 의도와 생각들, 교수들이 태클을 걸 경우 반박할 내용까지 전부 노트에 정리해서 미리 불어로 번역했다. 이번에는 아예 교수들과 싸울 각오로 준비해 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설명하는 작업에 대해 교수들은 역시나 시비를 걸어왔고 나는 준비해 온 대로 내 의도를 설명하며 반박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며 토론인지 말싸움인지 모를 대화가 오고 갔지만 나름 꼼꼼하게 준비한 내 의도에 교수들은 어느 정도 설득이 된 듯 보였고, 결국 네 맘대로 한번 진행해 보라는 승인이 떨어졌다.
그렇게 처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교수와 말다툼을 벌인 그 프로젝트에서 나는 학년 최고점을 받았다. 보란 듯이 이겼다는 승리감보다는, 본인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내 판단대로 진행한 작업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 그들에게 존경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교육 방식의 의도가,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태클에 반박하고 설득하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내용과 시간들이, 사실 그 무엇보다 효율적인 공부였던 것이다.
늘 지겹게 들어야 했던 '왜'라는 질문에는 반드시 '이유'라는 대답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실 엄청난 양의 준비와 조사가 필요하다.
'왜 이 폰트를 썼어?'라는 한없이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하기 위한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필요하다. 다른 폰트는 왜 안되는지, 왜 이 폰트가 이 디자인에 어울리는지, 왜 비슷비슷한 여러 폰트 중에서도 하필 이 폰트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어야 하고, 그 답을 위해서는 폰트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공부해야 한다. '왜 이 컬러를 썼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컬러를 공부해야 하고 '왜 이렇게 인쇄했어?'라는 질문에는 인쇄술을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 확실한 공부 방법이 어디 있을까?
결국 벨기에에서 내가 겪은 디자인 교육이라는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업의 의도와 방향, 전략을 스스로 조사하고 공부해 가면서 만들어가고, 그것을 교수와 토론하고, 또 때로는 싸워가며 그 의도를 납득시켜 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실무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이다. 클라이언트든 상사이든, 내 디자인을 통과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거기에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와 의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니 말이다.
여전히 쉽지 않은 학교 생활이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프로세스를 몸에 익혀가며 나는 디자인의 매력에 다시 흠뻑 빠지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이 반복된 인고의 시간 끝에 머릿속 세계관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면, 디자인은 조금 더 냉철한 이성과 잘 훈련된 감각으로 전체를 디렉팅 한다는 점에서 너무 멋있어 보였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예술의 매력에 빠져 발렁스 도시 이곳저곳을 소재로 삼던 그때처럼 다시 한번 뭔가를 창작하고 만들어 가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애초에 조용히 학교만 다니면서 학위만 딸 생각은 없었기에, 앞으로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