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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Apr 18. 2023

21.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법

2015년 5월, 브뤼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벨기에는 사실 만화 강국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머프, 땅땅 등이 벨기에 출신이고 브뤼셀 거리 곳곳에는 만화로 그려져 있는 벽화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도 만화나 일러스트북, 또는 아기자기한 피규어등을 파는 매장들이 여러 군데 널려있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평소 잘 꾸며진 매장이나 서점 구경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이런 브뤼셀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디자인 작업들을 즐겨 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좋은 스토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는 강했지만 거기에 만화 왕국인 벨기에의 분위기가 한몫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환경이주는 영향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나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유학생활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페이스북에는 'Facebook young artist'라는 페이지가 굉장히 핫했었는데,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고 소통하는 페이지였다. 페이지가 성장하면서 이곳을 통해 유명해진 아티스트, 크리에이터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도 나만의 콘텐츠를 갖고 싶었고, 그것을 브랜드화시키고 싶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웹툰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더 지속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름 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제안을 받아 작은 원고료를 받으며 연재하기도 하고, 덕분에 이런저런 곳에서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꾸준하게 자신만의 작업을 쌓아가는 게 어떤 기회들을 만들어내는지 작게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유럽에서 청춘을 보내던 나의 20대는, 아마 대부분의 작업하는 크리에이터들이 그러하듯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알려지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있었고, 자기 작품을 봐달라고 외쳐대는 수많은 후보자들 속에서 운 좋게 뜨는 케이스는 정말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아갔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조급함과 열등감에만 시달려있었다. 천천히 자기 것을 쌓아가야 할 나이에 뭐라도 더 빨리 이루고 싶었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한 조급함이 만들어낸 스트레스는 온전히 다 내가 받아야 할 몫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내 디자인 작업들을 본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운 브랜드 사업을 구상 중인데 파트너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지분도 나눠준다고 했다. 당시 그 얘기를 들은 내 머릿속은 이미 성장한 스타트업에 초기멤버로 올라타 성공한 삶을 그리고 있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엄마도 취업이 된 거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몇 번의 원격회의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업은 생각보다 빡셌다. 지분 계약이라는 건 어린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분을 나눠준다는 것은 즉 수익이 생길동안 아무런 보수도 없다는 얘기였고, 파트너라는 말과는 달리 대표는 나를 부하 직원 마냥 하대하고 작업을 지시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일하는지 체크하기까지 했다. 몇 주 뒤 체코 프라하에서 첫 출장을 가지며 처음으로 그를 대면했고, 그때까지도 그가 얘기하는 비전을 믿으며, 밤을 새우도록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수입도 없이 계속해서 강행 작업이 이어지자 나는 도저히 견디지 못했고, 그간 일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작업비를 요구했다. 그러자 대표는 오히려 지금까지 작업이 진전되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나에게 청구했다. 결국 민사소송 얘기까지 나오며 계약은 파기되었고, 나는 그동안 개같이 일한 것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심지어 내 사비로 경비를 선 지출한 프라하 출장마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정말 한 푼 한 푼 아껴 살아가던 그 당시 바닥까지 긁어서 마련한 경비였다. 그냥 인생 수업받은 거라 스스로 위로하기엔 너무 뼈아팠던 그 경험이, 이력서에 적기도 부끄러운 내 인생 첫 사회 경력이었다.


계약이 파기되고 서로 내용증명을 보내며 민사소송을 준비하던 당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때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일의 무게가 너무 컸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평소 집에 힘든 일을 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이 일만큼은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녹음본도 들려주었다. 엄마는 사태를 파악하고 극대노 하더니 주변 법조인의 도움을 구했다. 그동안 타지에서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오다 처음으로 어른의 보호를 받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 일을 겪는 동안 너무 큰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피부에는 다시 두드러기가 났다. 낮에는 하루 온종일 심장이 요동치듯 뛰었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일을 폐인같이 살아갔다. 안 그래도 타지에서 살며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던 참이었다. 비자문제, 행정문제, 매일같이 터져대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문제들까지... 도대체 언제쯤이면 아무런 문제 없이 스트레스를 안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렇게 괴로워하던 와중에, 내 소송문제를 옆에서 도와주던 한 선배가 담담하게 건네준 말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어. 그저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스릴지를 배워야 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는 늘 스트레스가 오는 것에 대해 괴로워할 뿐이었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 건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마치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나이를 먹는 건지 원망하고 떼쓰는 것 마냥.

그때부터 마음에도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근육을 키우고, 좋은 음식을 챙겨 먹지만 마음에는 그만큼의 건강을 신경 써주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는 그대로 화를 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에 열이 생겨 피부가 뒤집어지지만, 사실 그 스트레스를 내가 어떻게 관리하고 컨트롤할지는 나에게 달린 일이고, 그래서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을 모른 채 나는 아무 근육도 없는 빈약한 마음 상태로 힘든 멘탈 노동을 강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에 와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려 밤을 지새운 적이 많다. 늘 생각이 많은 성격 탓에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눈을 감으면 허공 속 온갖 고민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들이 나를 짓누르듯 내려왔다. 그렇게 잠을 못 이루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목적지도 없이 방향을 잃은 채 컴퓨터 속을 헤매곤 했다.


'삶은 절대로 당신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면 푹 주무셔도 됩니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는데, 가수 박진영이 방송에 나와 했던 얘기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 말이 이상하게도 계속 내 마음을 건드렸고, 헤아릴 수 없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늘 불안과 걱정으로 점철된 밤을 지새웠을까? 미래의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저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불안 없이 잠들자.


그때 이후로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한 가지 삶의 철칙이 있다. 자려고 누운 순간부터 딱 걱정금지. 앞날에 대한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오른쪽 팔에는 프랑스어로 된 짧은 문장이 타투로 새겨져 있다. 박진영이 얘기했던 저 말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프랑스 격언이다. 지금도 가끔씩 앞날이 불안하고 걱정될 때면, 오른팔을 바라보고 다시 그때의 다짐을 마음에 새겨보곤 한다.


'À Chaque jour suffit sa peine'

(각각의 하루는 그날만의 고통으로 충분하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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