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어느덧 시간이 지나 3학년이 되고, 학사의 마지막 무렵에 다다랐을 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이대로 학사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여기서 석사를 시작할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사실 석사에는 크게 관심도 없었거니와, 공부만 마치면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이 다음 노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저 해외에 한번 나와 살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시작된 유학이었으니까.
인생을 살면서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는 이처럼, 늘 큰 변화와 선택을 앞둔 과도기 시점이었다. 그중에서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졌다. 처음 프랑스에 온 건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벨기에로 온 뒤에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 웹툰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디자인이라는 학문이 주는 이성적이면서도 크리에이티브한,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묘하게 샤프하고 정제된 그 매력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이포그래피나 편집 등,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에 깊게 빠져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그림을 그려댔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재미를 느꼈던 건 브랜딩 작업이었다. 어느 한 콘셉트를 토대로, 브랜드를 위해 하나의 전반적인 디자인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한 작업보다는 내 작업을 하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렇듯 디자인과 아트, 그 미묘한 경계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나는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맘때쯤 앤트워프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게 되었다. 브뤼셀에서 기차로 약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앤트워프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 3대 패션스쿨이 있을 만큼 패션으로 유명한 도시였고, 길거리는 수많은 부티크들로 채워져 꽤나 힙한 분위기가 있었다. 앤트워프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유명한 브랜드들의 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골목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작은 편집샵들이었다. 스트릿 패션, 북유럽 스타일, 친환경+아웃도어 등등..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편집샵을 둘러보며 전혀 알지 못했던 색다른 브랜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간질간질한 열망 같은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나도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패션이든, 소품이든, 그래픽 아트웍이든, 상업적인 브랜드라는 형태 안에서 자기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애초에 다양하고 독특한 유럽의 크리에이티브를 동경해 이곳까지 왔다면,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브랜드를 준비하는 게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걸 나의 석사 프로젝트로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잡히자 늘 그래왔듯이 나의 행동은 빨라졌고, 여러 가지 레퍼런스를 찾아가며 내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내용이 아직 알차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우선 교수를 찾아가 석사 프로젝트로서의 진행을 허락받고, 석사과정 새 학기 등록을 했다. 교수들은 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으나 그것은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빨리 더 구체적인 기획안을 잡아야 했다.
그때부터 매일같이 집과 카페를 오가며 작업에 몰두했다. 내가 만든 그래픽 세계관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다양한 콘텐츠 (예를 들면 패션, 굿즈, 전시, 영상 등)로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고, 유럽의 힙스터 문화에 영감을 받아 그들의 감성을 듬뿍 담은 캐릭터들과 아트웍들로 브랜드 에셋들을 채워나갔다. 아래 사진은, 당시 초창기에 만든 스타일 이미지이다.
2015년에 작업한 가상의 그래픽 브랜드, Nick & James
이 정도면 아트웍 안에 여러 가지 스토리 텔링을 담을 수 있겠다 생각하며 흡족하게 교수들을 찾아가 보여줬으나 웬걸, 그들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다. 작업의 이미지와 퀄리티는 좋으나 이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가 도저히 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누가 유럽의 예술학교 아니랄까 봐, 작업의 철학을 중요시하는 극히 그들 다운 답변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석사 프로젝트인데,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지...
결국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이 첫 번째 시안은 폐기되었다. 시무룩한 기분으로 다시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지, 처음부터 다시 과정을 밟아나갔다. 여러 레퍼런스를 뒤적이며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나는 '도시'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중에도 시스템으로서의 도시, 디지털과 개인정보, 관료주의, 서류 속 정보들로 증명되는 시민의 삶 등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인 회색 느낌의 주제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나름 귀엽고 힙한 그래픽 스타일을 유지하되, 그 이면에는 이처럼 꽤나 무겁고 깊이 있는 도시 철학을 다뤄보면 어떨까?
그렇게 '도시'를 주제로 조금 더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캐릭터와 아트웍들을 작업해 나가기 시작했다.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마셜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등 관련 영화나 책 등을 닥치는 대로 읽어가며 내용의 철학적 뼈대를 세웠다. 확실히 또렷한 주제가 잡히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이 생기고, 콘텐츠의 방향이 막힘없이 쭉쭉 진행되기 시작했다. 교수들도 전 작업에 비해 훨씬 더 마음에 들어 했고, 매주 한 번씩 면담을 가지며 피드백을 얻고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당시 비슷한 선례나 레퍼런스가 부족했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카페에서 혼자 살다시피 했다.
브랜드의 여러 작업들이 늘어나고 계절이 바뀌며 한 학기가 지나갔을 무렵,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찾아왔다. 우울증이 온 것이다.
원인은 다양했다. 첫 번째로는 우울한 벨기에의 날씨. 날씨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성향이라 생각해 왔었지만, 겨울 내내 흐리고 비만 오던 브뤼셀의 우중충함은 결국 내 기분을 한없이 무너뜨렸다.
두 번째로는 심리적 외로움. 한국에서 학생일 때부터 주위에는 늘 예술을 하는 친구들로 넘쳐났고 그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작업에 대해, 여러 문화나 예술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겨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브뤼셀에서는 맘 맞는 동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가끔 내 작업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얻고, 그렇게 서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저 매일 카페에 가서 혼자 작업하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무언가 풀리지 않는 공허함이 쌓여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당시 한국에 안 간 지 3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타지에서 아무런 자극도, 동기부여도 없이 혼자 은둔자처럼 작업을 이어갔으니, 결국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생각보다 깊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작업도 이어가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나는,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석사 1학년을 마치자마자 여름방학을 이용해 3년 만에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머리도 식히고,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도 만나고, 푹 쉬다 올 계획이었다. 마리와 틸, 토마 등 친한 벨기에 친구들까지 한국으로 놀러 오며 그 어느 때보다 정말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냈다. 그렇게 2개월 정도의 즐거운 여름을 보내고 다시 브뤼셀로 돌아왔을 무렵, 나는 또 한 번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만든 브랜드로 무려 6개의 국내 전시가 잡혀버린 것이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