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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Feb 22. 2024

34. 인디게임 제작에 난항을 겪다

2018년 5월, 파리


취업 이야기를 하느라 잠시 잊혀졌던 게임 프로젝트와 그 밖의 근황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파리로 돌아온 이후 게임 제작은 사실 큰 난항을 빚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개발자는 혼자서 한 게임을 맡아 개발하기에 실력이 많이 미숙했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전시나 브랜드 제품 등,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분야였기에 몸은 힘들었어도 나 스스로를 갈아 넣으면 어떻게든 진행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딩에 의한 개발이 메인이었던 게임 제작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들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프로젝트는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고, 구현을 해놓으면 생각지 못한 버그가 생기고 또 이 버그를 잡는데 기약 없는 시간이 걸리는 절망스럽고 갑갑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불안하고 허술하게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이 게임은 우리 브랜드의 사활이 걸린 메인 프로젝트였고, 우리를 믿고 돈을 펀딩 해준 수많은 후원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재영이와 나는 긴 시간 얘기를 나눈 끝에, 상황은 어렵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실력을 갖춘 시니어 개발자를 모색해 보기로 결정했다. 코딩에 대해 문외한인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는 경험을 갖춘 사람, 게임에 대해 더 전문적인 시각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렇게 재영이는 조건은 매력적이지 않지만 우리 게임의 가치를 알아주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해줄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다.


소르본 대학의 석사과정으로 학생 비자를 얻고 파리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학교에 나가질 않았다. 소르본은 단순히 프랑스에 거주할 비자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이미 벨기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이상 굳이 시간과 노력을 다시 들여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1년짜리 비자였기에 파리에서 그다음의 스텝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수업을 듣고 석사과정을 마쳐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앞으로 파리에서의 계획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도저히 맘이 내키질 않았다. 그리고 이때의 무모했던 결정은 정확히 1년 뒤 내 발목을 잡게 된다.


몇 주 후, 재영이가 기적적으로 개발자 한 분을 찾았고, 간단한 면접을 마친 뒤 우리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국의 주얼리 브랜드와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 안에서 게임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마쥬 인턴일을 시작하면서 따로 프로젝트를 지휘한다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시차도 있었기에 인턴인 내가 필요한 시간을 마음껏 빼서 한국에 있는 이들과 소통하고 진행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을 나는 부랴부랴 점심식사를 남들보다 빨리 끝낸 뒤, 사무실 지하에 있는 빈 회의실에 몰래 들어가 한국에 있는 팀과 정기회의를 가졌다. 간혹 드나드는 사람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내가 나누는 한국어 내용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다는 점이 큰 이점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내가 한국에 있는 가족/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지,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매일 정기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과 이슈 내용을 정리하고 난 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쉴틈도 없이 그날 보고받은 내용에 따른 게임 작업을 밤늦게까지 이어나갔다. 하루라도 그냥 쉬고 자버린다면 곧 아침이 돼서 일어날 한국의 개발자들이 작업할 내용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기에, 정신력으로 피곤함을 견디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 당시 하루를 통틀어 이동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켰던 과정이었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는 자연스레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다행히 몸을 갈아 넣은 시간에 비례하여 게임은 전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진행되어 갔고, 어느덧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캐릭터가 움직이고, 터치를 하면 액션이 활성화되고, 아이템이 작동되는 등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추상적인 내용들이 실제로 핸드폰 속에서 구현이 되는 것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게임 개발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던 우리가, 조금씩 우리만의 인디게임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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