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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 Apr 13. 2023

멋있는 명함

바버샵


 미세먼지는 좀 있었지만 날이 좋은 수요일 낮, 오랜만에 밖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고민하다 망원동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보지 못한 책방과 빈티지샵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아현역과 충정로역 사이에 살고 있는 나는 망원동에 갈 때면 7011번 버스를 탄다.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여유롭게 창 밖을 보다 보면 그곳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바람을 쐬며 바깥을 볼 수 있는 버스를 더 선호한다.


 12시쯤 됐을까.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7011번 버스를 탔다. 역시 평일 낮에는 자리가 텅텅 비어있어서 좋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신촌, 홍대 그리고 합정을 지나면 도착이니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학기 중이어서 그런지 풋풋한 대학생들, 틈틈이 섞여있는 외국인들,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편한 옷차림의 사람들, 점심식사를 한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산책하는 직장인들 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평일의 낮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상수역을 지날 때 익숙한 사람이 창 밖에 보였다. S였다.

 

 S는 한 달에 한번 나에게 머리를 하러 오시는 고객님이다. 옆 뒤는 0MM로 아주 높게 윗머리는 가위로 자를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로 항상 커트하신다. 윗머리는 누르고 앞머리는 살짝 올려서 스타일링하신다.(이게 무슨 스타일이지 싶으신 분들은 네이버에 '크루컷'이라고 검색하신 뒤 이미지를 보시면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머리를 자르고 가셔서 인지 스치듯 그를 지나쳤지만 헤어 스타일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심 뿌듯했다. 아니 많이 뿌듯했다. '멋있게 잘하고 다니시니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누구에게는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 오는 모든 분들이 멋있게 다니실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헤어스타일이라는 게 그렇다. 머리 자른 당일에는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은 경우가 존재한다. 때문에 나에게 다시 오기까지의 시간 동안 손질이 얼마나 편한지 무엇보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 자른 당일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그 스타일은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을 한다. (간혹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머리를 손질해 본 경험이 있는지, 어떤 옷들을 주로 입으시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 밖의 S를 보고 고객님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 한 분 한 분은 나에게 명함과도 같다. 내가 잘라준 머리를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중요한 미팅이 있을 수도 있고 소중한 연인을 만날 수도 있고 더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자른 거라고 각인을 새길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혹시라도 머리가 망쳤다면 어떨까. 한번 상상해 보자. 나에게 머리를 한 S가 친구를 만났다.


- 오랜만이다. 근데 너 머리 어디서 잘랐냐? 개이상한데?

"아 그니까 바버샵 가서 잘랐는데 조져놨어."

- ㅋㅋㅋㅋㅋㅋ 바버샵은 무슨 바버샵이냐 그냥 다니던 곳 가면 되지.

"그러게 비싼 돈 주고 잘랐는데 모자 쓰고 다녀야겠네. 너는 OO바버샵 절대 가지 마라."

- 응 절대 안 가~

 

벌써 마음이 아프다. (부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때문에 나의 고객들은 늘 멋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만지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그리고 한 달 후 나에게 다시 찾아와 그동안에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도 새로운 스타일에 관심이 있거나 아직 바버샵이 두렵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도 좋다. 누구의 이야기든 귀 기울여들을 준비가 돼있으니 말이다.


 끝으로 나의 멋있는 명함이 되어 주시는 고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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