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샵
바버샵은 많이 이들에게 낯선 공간이다. 바버샵에 방문해보지 않은 많은 분들은 스스로가 꼭 멋있고 단정한 사람이어야만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는 유독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분들이 계신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의 이야기다.
무거운 배낭을 멘 청년이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P는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총 6단계에 걸쳐서 이뤄지는 이 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면접시험을 며칠 남겨두고 머리를 자르러 왔다. 수개월, 수년의 시간 동안 시험을 준비한 그는 이미 탈락의 고배를 몇 번 맛봤고 면접은 처음이라고 했다. 긴장한 탓이었을까 어깨는 유독 무거워 보였고 꽤나 지쳐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는 면접 때 단정히 보여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깔끔하게 하고 싶다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2:8 또는 3:7로 가르마를 나누어 빗질을 해서 머리를 넘기는 포마드 스타일 (정식 명칭은 사이드 파트이다.) 바버샵에 처음 방문하시거나 이전에 머리손질을 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꽤 난이도가 있는 헤어스타일이다. 때문에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는 손질이 쉬우면서 스타일링을 꼭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주로 추천해 드린다. 하지만 P에게 이러한 것들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단정하고 깔끔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면접에서 '합격'해야만 했다.
사실 나는 늘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을까.' 수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왜 그들은 '경찰'이 되고자 했을까. 물론 한 번에 시험을 통과해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더 많은 시간을 쏟아도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떻게 수많은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왜 경찰이 되고 싶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그 근처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했다. 당연히 그때 당시 민간인들이 폭격당한 사건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였고 그날을 계기로 시민들을 보호하는 경찰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저 시민을 보호하고 싶다는 그 마음하나로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부하고 또 공부한 그가 멋있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면접에 무조건 합격하겠는데요?!"
P는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커트도 점점 마무리되어갔다. 덮여있던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머리 위에는 기다란 선이 하나 생겼다. 눈썹은 보다 선명해졌다. 깔끔하다. 하지만 거울 속 본인의 모습을 본 정의의 표정은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 더 더 어색해 보였다.
"머리 괜찮으실까요?"
"ㄴ...ㅔ... 네..."
괜찮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머리를 하고 면접을 봐야 했다. 간단한 스타일링 방법을 설명해준 후 커트는 끝이 났다. P는 커트가 끝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서울이 아닌 고향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 면접도 내려가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려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무엇보다 면접은 잘 봤을까. 경찰이 되는 상상을 수백 번 수천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아마 면접에 합격했다면 고향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떨어졌다면 다시 공부를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운이 없다면 앞으로 몇 개월, 몇 년을 더 공부해야 할 수도 있다. 언제 경찰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꼭 시민을 보호해 주는 멋있는 경찰관이 되면 좋겠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시민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나에게 찾아와 그때 그 머리를 하고 누구보다 멋있게 하고 나갔으면 좋겠다.
"머리 괜찮으실까요?"
"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