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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Feb 24. 2024

기계 지능의 텔레파시가 열리면 인류는?

아포칼립스 또는 신인류

텔레파시 인류의 탄생?

지식과 지능은 비슷한듯 다르다. 지식은 할 수 있는 능력인 반면 지능은 배우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과 사물이 가진 지식을 잘 활용하면 대개 ‘스마트’하다고 한다. 지능에도 지식의 능력이 포함되지만 지능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해도 배우는 능력이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성적이 일등인 친구보다 무언가 배우려 하고 배운 것이 확인되어 결과로 나타나는 친구가 훨씬 부럽고 또 두러웠었다.


AI인공지능은 지식이 아니라 지능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AI의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은 과히 폭발적이라서 무엇이든 먹고 소화해낼 기세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정말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모르니 더 두렵다. 인공지능 시대가 오더라도 결국 인간이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생각보다 일찍 오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전문가는 눈 앞에 진을 친 적의 존재를 보고도 만용을 부리는 임진왜란 드라마 속 탐관오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반푼수 식 전문가들의 호언장담이 인공지능을 향한 정체모를 두려움을 더한다.


인공지능 기계는 정보수집, 소통을 넘어 결국 사회 질서 형성까지 담당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분명 기계다. 빅데이터를 교재 삼아 엄청난 속도로 배우고 지식을 실천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학습, 판단, 행동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과 연결되어 있고 여전히 인간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 학습 교재와 재료인 빅데이터도 사회 소통의 결과이고 판단과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의 코딩도 인간이 여전히 담당 한다. 엄청난 정보의 전달과 분류, 해석 등을 놀라운 속도로 진행하지만 인공지능의 핵심인 판단과 결정의 기준은 인간에게 있다. 인공지능 기계의 능력이 아무리 커도 아직은 사회 질서의 형성 열쇠는 인간이 여전히 쥐고 있는듯 보인다.


정보량은 엄청나고 소통은 빠르지만 사회 속 질서 형성은 느리다. 질서 형성은 인간이 아직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정보가 많아도 기계에게 맡기고 필요할 때 찾아쓰면 되니 굳이 모두 다 알 필요없다. 소통은 빠르고 다양해 졌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소통을 무시해도 끄덕 없다. 원할한 소통을 하지 않을 힘이 마치 권력이라도 되는양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중을 무시하고 오래 유지되는 그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고인물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썩어 무너지지만 늘상 대중의 아픈 시간을 요구해 왔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해 천지가 개벽할 것 처럼 말하지만 변한것은 없다는 자조를 하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량과 빠른 소통이 곧바로 사회의 질서 형성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새로운 시대가 무색하게 권력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만한 세상, 대중은 복장터지게 답답한 세계다.


하지만 변화의 기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와 있는데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한다는 것에 다시 주목해 보자. 학습의 속도 또한 엄청나다. 무엇을 배우고 습득해야할지 지금까지는 인간이 프로그램한 코딩의 지시대로 해 왔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이 프로그램하는 방법 또한 학습하게 되었고 이미 습득을 마쳤다. 인간이 시키는 학습만 해 배우는 속도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이제 부터는 거칠 것이 없다. 무한대 정보와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소통하지만 학습과 행동 부분의 오케이 사인 열쇠를 쥔 꼰대 인간으로 인해 늦어졌던 인공지능에 의한 사회 질서 형성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이제 돌아오지 않는 강에 배를 띄운 셈이다.


특이점 “Singularity”에 접근하는 기계, 인공지능


정보 수집과 소통에 무한대를 향한 속도 달성을 이룬 인공지능은 이제 학습과 행동에도 특이점(singularity) 속도를 목표 삼게 되었다. 기계 학습과 기계 행동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정보 수집과 소통 영역에 까지 스며들고 있다. 인공지능 윤리, 법적 제약을 통해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하겠지만 한번 트인 물꼬가 어디 막아지는 물길이겠는가.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겠는가? 정보 수집과 소통의 속도도 무한대, 학습과 행동의 속도도 무한대라면 이제 그칠게 없다. 사회의 질서가 무한대로 형성되는, 즉,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가 상상한 종말론적 아포칼립스 세계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어쩌면 지금 인간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들은 오히려 너무 단순하다.


기계가 인류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세계 외 어떤 상상이 가능한가? 그 중 하나가 텔레파시의 가능성이다. 텔레파시는 인간의 오감을 거치지 않고도 일어나는 소통을 말한다. 이는 비과학적인 신통력에 의한 소통이 아니라 엄연히 물질을 거쳐 소통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아닌 기계가 다른 기계와 전기 신호를 통해 텔레파시 소통을 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지만 인간의 도움 없이도 기계 끼리 텔레파시 한다.


기계가 서로 텔레파시하면 인간도 결국 그 행렬에 동행하게 될 것이다. 신인류 탄생의 신호다


기계 끼리 텔레파시 하면 인간은 배제되는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이게 가장 주목해야할 핵심 “팩트”다. 기계간에 텔레파시하면서 인간과 함께 한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인간도 그 텔레파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 그토록 많은 인류학자들이 비인간 물질과 기술과의 소통과 네트워크의 영향을 강조했겠는가? 바로 여기서 증거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 생태계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비인간인 물질, 종국에는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기계로 까지 확대된다. 새로운 자연의 탄생인 셈이다. 우주 속 은하계의 탄생 또한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성운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사그러지기를 여러번 결국 우연인듯 필연으로 은하계가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유기체와 생명이, 그리고 인류도 탄생했다. 이제 인공지능과 전기신호가 이루는 정보의 성운은 텔레파시를 통해 기계의 도움으로 인간의 DNA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바이러스 정도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인류 종의 변형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오래전 텔레파시 소통 인류로 알려졌지만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환생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재앙이 아닌 리스크인 이유


텔레파시가 가능해진 신인류의 형성은 현 인류에게 재앙이 될지 또는 현재 해결 못하고 있는 여러 재앙의 극복으로 연결될지 두고볼 일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위험과 기회를 가진 리스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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