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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y 27. 2023

아는 것을 아는, 모르는 것을 아는 차이

기록을 믿는 인공지능과 기억을 의심하는 사람

기록을 믿는 인공지능과 기억을 의심하는 사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만약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외계생명체가 온다면 그들이 발견하게 될 것은 인류의 기록이다. 기억은 아니고 기록이 발견된다. 이는 고고학자가 고대유적지에서, 역사학자가 고서에서 발견하는 것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기억이 아니라 기록인 것과 같다. 아무리 유능한 고고학자, 인류학자라고 해도 기억을 발굴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영상을 허락해 영상 증언으로 남은 기록은 영원히 남아 기록 아닌 기억이지 않겠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의 육성 기록일 뿐이다. 왜냐하면 기억은 그 순간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만 생각을 통해서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독살되었다는 기록의 오류

“의원이 임금의 수라에 비소를 조금 넣었다”란 기록이 조선실록에 적혀있다면 그 의원이 임금을 독약인 비소로 독살하려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시간여행을 통해 그 순간으로 가보니 의원은 불치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임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미량의 비소를 임금이 먹을 죽에 넣어 마지막 희망을 가져 본 것이었다. 비소가 독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량의 독으로 병을 치료하려 했던 것이다. 상황이 없는 기록은 이렇듯 잘못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역사상 가장 녹색이었던 정부는?

독일이란 국가는 환경을 위하는 여러 녹색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2023년 4월 15일 독일내 가동 중이던 세군데 원전을 중단함으로써 완벽한 탈원전을 실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에너지 수급이 어려운 시점에 단행되었고 2023년 초 유럽연합이 원자력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와중인 점을 고려하면 독일이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원전과는 상황과 철학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오래전 독일에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개발과 성장에 다른 모든 나라들이 힘을 쏟을 때 독일정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녹색정책을 폈다. 유기농업을 도입하고 산림보호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만약 이 기록만 보자면 녹색의 진보정부임에 틀림이 없다. 기록이 그렇게 말해준다. 그런데 이 기록이 “팩트”인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 반전이 있다. 당시 독일 정부는 나치당이었다.


디지털 과학기술이란 “해일 리스크”가 편의를 봐준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인류의 가능한 모든 기록을 갖게 되었다. 많은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가진 자산은 디지털시대에도 끄덕없다고 믿고 싶겠지만 해일에 견뎌낼 해변 건물과 구조물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뿌리채 뽑히는 변화를 겪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움켜잡고 견뎌낼 재간이 있다고 인류는 여전히 믿는듯 보인다. 후쿠시마 해일이 아무리 가혹해도 재해지역에서 벗어나 일본의 다른 곳에 어렵지만 정착하면 된다. 하지만 디지털 해일은 더 이상 피신해 정착할 안전한 피난처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데이터를 갖고 거의 모든 가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 강도도 계속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기록에 대항하는 기억

디지털 해일을 피할 길은 디지털 과학기술 속에서도 여전히 통할 직업과 자산을 찾는 것으로는 찾을 수 없다. 해일이 쓸고 간 자리에 빈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나라를 침략해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는데 내 것만 아니면 괜찮다는 비겁하고 약삭빠름도 이번에는 소용없을 것이다. 길은 딱 하나 밖에는 없다. 디지털이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을 갖고 디지털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떳떳하게 맞서는 것이다. 빅데이터가 가지지 못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기록이 남겨진 상황이 개인에게 남긴 것이다. 기억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오직 디지털시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디지털시대 과학기술이 가져올 온갖 가치와 혜택을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혜택이 인류의 마지막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면 안되기에 기억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고로 의심한다!” 데카르트

기록은 모든 것을 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자신이 이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정확히 안다. 절세미인이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무기로 삼으면 큰 일이다. 인공지능이 양귀비가 아니라 노년에 아프리카 어린이과 함께 보낸 오드리 헵번이 되게 하려면 인류는 기억을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기억은 기록이 만들어진 당시 상황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모든 이의 기억은 다르다. 이런 연유로 기억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길이지만 기록을 빼앗긴 인류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 데카르트가 이 시대를 방문한다면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대신 “나는 기억한다. 고로 의심한다”라고 그의 믿음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쿠키영상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인류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인류가 남긴 기록일까 아니면 인류가 사용한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일까? 외계인이 인류의 본 모습을 이해하려면 어떤 길이 효과적인지 현재로서는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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