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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y 06. 2023

디지털을 배워서 아는 세대 “디배세대”의 조용한 은퇴

우물물 먹지않는다고 수돗물에 중독?

기성세대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디지털 MZ세대가 디지털에 중독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www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89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디지털세대라고 한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디지털은 산소와 물과 같아 호흡하고 물 마신다고 산소와 물에 중독되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꼭 디지털 중독을 따지자면 오히려 아날로그 기성세대, 즉, 디지털을 배워서 아는 세대(디배세대)가 중독될 수는 있겠다.


오래 전 책이 처음 생겼을 때 대화로 지식이 전달 되었던 방식이 책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책에 중독된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통의 방식으로 대화와 책이 공존하는 길을 찾았다. TV가 처음 생겨 어린이들을 TV앞으로 유혹했을 때 독서할 시간을 빼앗겼다고 그 당시 어른들은 걱정했었다. 지금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것도 이전 책과 TV가 처음 만들어 보급되었던 시절과 다르지 않다. 없던 것이 생겼으니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배세대는 지식을 책, TV 교육방송 강의, 학교수업을 통해 얻었다면 지금 세대는 책, TV, 학교수업 외에 디지털에 지식을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는 계속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먹는 물을 우물에만 의지하다가 동네에 수돗물이 들어와 수돗물을 사용한다고 수돗물에 중독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물은 물일 뿐이다. 디지털세대의 디지털 의존은 중독이 아니라 호흡하듯 그냥 사용하고 있다. 만약 중독을 걱정해야 한다면 신기한 도구에 푹 빠져 자신이 알았던 고유의 방식을 잃어버린 디배세대일 것이다. 소통과 지식 전달 방식으로서의 디지털 형태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는 디배세대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디배세대는 어짜피 사라지며 미래 세상은 디배세대가 아닌 디지털세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가 아무리 걱정돼도 디지털세대가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길 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디지털세대는 디지털 토양에서 디지털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태어 나보니 디지털 세대였는데 디지털을 벗어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딴 섬 디지털 원주민이 있어 원주민을 디지털 없는 문명 도시로 데려와 새롭게 살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외딴 섬, 문명도시 모두 디지털인데 디지털세대를 어디로 데려가 변화시킨단 말인가. 불가능한 변화를 얘기해서는 곤란하다.


디지털을 발명한 디배세대가 해야할 일이 남아 있기는 하다. 디지털이든 이전 아날로그 방식이든 공히 소통의 언어이다. 소통의 도구에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인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 디지털을 창조해낸 창의력과 디지털기술이 일상으로 침투해 왔을 때 악착같이 배워 적응하면서 생존한 디배세력의 지혜를 남겨주면 된다. 그러고 나면 미련은 남겠지만 아쉬워도 사라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디지털시대 이데올로기, 제도, 관습, 문명 모두 바뀔 것이고 새로운 질서가 어김없이 형성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문명의 주역 디지털세대가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디배세대여, 그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스 아테네 시절 대화와 소통은 크고 둥근 기둥이 있던 회랑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회랑의 기둥은 구조 상 지붕과 건축물을 떠 받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떠 받히고 있는 역할을 했다. 기둥이 놓였던 회랑 공간에서 그 시대 문화, 관습, 제도가 형성되고 완성되었다. 이제 야외 광장, 학교 교실과 강단은 인터넷 회랑으로 이어졌다. 디지털시대의 회랑은 인터넷과 연결망이란 기둥이 떠 받치고 있다. 디지털 회랑에서 잠시 시간 보내다 떠날 세대가 회랑을 너무 바꾸려 하지 말자. 그러다 기둥에 금이 가면 구조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저 그곳에서 한 시절 보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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