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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r 20. 2024

정신 분열이란 방편을 써야 겨우 치유되는 병

독극물 비소도 알고 쓰면 약이 된다

정신 분열이란 방편을 써야 겨우 치유되는 병


세상은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다. 생명 뿐만 아니라 생명 없는 존재들도 실은 그물망 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생태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태의 모든 연결을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느끼지 못한다. 느껴서 알게 되면 모든 문제와 고통에서 한꺼번에 순식간에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전능한 존재를 믿고 자신을 수행하면서 그런 앎의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 생태의 연결을 깨달아 모든 욕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사람은 역사상 몇 없다. 신의 아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분 정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힘든 것을 믿고 수행하면서 이루라고 한다면 그건 좀 무모하지 않은가. 성공확률이 그렇게 낮은데 말이다.


전혀 다른 방법을 제안한 철학자가 있었다. 탐욕의 강렬한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상황만 생기면 믿으며 기도하고 수행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어김없이 탐욕을 드러내는 자아와는 전혀 다른 자아를 탄생시키는, 일종의 병적 모습을 이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니 헐, 아무리 그래도 정신병에 걸려 탐욕을 벗어나자고요?” 그게 아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한다. 인정하지도 않는다. 정신분열 현상 처럼 다른 자아를 탄생시키는 것은 그 방법을 쓰고 있는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지극하게 잘 알면서 쓰는 것이다. 조선시대 명의였던 허준은 비소가 독약인 것을 알면서도 지독한 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던가. 알고 쓰는 것은 병적 현상이 아니라 방편인 것이다.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그 정도로 자본주의의 믿음은 깊고 병폐는 강렬하여 빠져 나오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라는 다른 이데올로기로 벗어날 수 있다고들 한다. 그건 아니다. 눈가림일 뿐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피를 먹고 사는 사회 개념을 하나 만든 것인데 특별히 다를게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정신분열 방편을 써서 겨우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병은 바로 자본이라는 바이러스가 숙주하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미친척 하면서 자신까지 살짝 속여야 겨우 탈출하는 희망의 불꽃이 보이는 정도이니 그 병이 얼마나 깊고 지독한가.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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