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약 개념
어느날 당신은 신을 대신해서 세상사람들에게 꼭 전달해야 하는 진리를 전달 받았다. 세상 사람들을 모아 신께서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이것이라고 말하려다 보니 걱정이 생겼다. 먼저 신이 말하고픈 절대 진리가 말과 글로 잘 표현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간다. 두번째 설사 잘 표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말과 글을 듣고 읽은 사람들이 신의 절대진리를 제대로 전달 받을지 확실치가 않다. 말과 글은 약과 같아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독이 되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빙빙 둘러 주위를 건드리고 주변을 맴도는 모습만 보여주어야만 말 듣고 글 읽는 사람이 직접 진리를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화이다. 비유를 가진 우화가 또한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독이 되기도 하고 곡해해서 신의 뜻이라 속이면서 달콤한 이익만을 뽑아 취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리 요구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단도직입하면 뽀족한 칼끝에 찔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하고 글쓰는 작가는 자기의 이름으로 말하고 글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름, 진리의 이름, 진리를 말하는 지식의 힘으로,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식의 진실을 통해 말한다. 문자는 의도를 감춘채 의도를 유도해 낼 목적으로만 행동한다.
사전을 보면 이런 방법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한 단어의 뜻은 여러 다른 단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성공 바로 옆에는 늘상 역경이 동반되는 것도 글의 의미와 결코 다르지 않다.
글이 데리다에 의해 약으로 설명가능한 것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으며 깊은 구덩이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훨씬 강한 유혹을 주어 빠져 나오게 함이다. 같은 논리로 글은 진리를 배달해 주지 않는다. 진리로 가게 하려면 일단 발목에 걸려 있는 사슬부터 끊어 주어야 한다. 방편같은 것이다. 글은 당신이 머문 꿀발린 유토피아에서 탈출하게 작은 탈출구만을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