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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r 01. 2024

“네 이름이 뭐니?” “…” “그럼 지금 이름은 뭐니?

이름 그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름 그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린 대개 하나의 이름을 갖는다. 주민등록 이름인데 태어났을 때 가족으로부터 받아 국민으로 등록된 이름이다. 사회의 고정된 통념, 프레임 중에서 이름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름이란 관습은 좀처럼 변화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만약 태어나 딱 한 벌의 옷만 허락되어 하나의 옷만 입고 외출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물론 모르는 일이긴 하다. 사회 관습과 법이라면 그걸 또 받아들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정도로 우리 사회는 말도 안되는 것들이 관습, 법, 문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통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면 호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특정 목적으로 또는 호감을 받기 위해 억지로 이름을 외웠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노력은 감사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 배경을 알 수 없다. 다른 모든 것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오로지 이름만 기억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와 한 사람이 다른 이름을 많이 가져도 혼란스럽지 않게 할 수 있다. 통념상 어려운 것이지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경을 통과할 때 이름, 세금내고 투표하고 의료 서비스 받을 때 이름, 쇼핑할 때 이름, 게임할 때 이름, 주식에 투자할 때 이름, 쓰레기 버릴 때의 이름을 모두 다르게 할 수 있다. 또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을 때 이 모든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뭐가 특별히 문제되겠는가. 이름을 꼭 확인해야만 보안,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경우는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전히 이름을 고집하지만 사실 기능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졌다.


굳이 한 사람에 대해 하나의 이름을 사회가 유지하는 것은 다분히 사회적 습관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굳이 바꾸지 않는 것이다. 이름이 하나이니 유명한 사람이 생긴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가? 예능계든, 정치계든, 예술계든 유명한 사람 몇 사람만 온통 판을 치는 것도 어찌 보면 그 이름 때문이라도 할 수 있다. 물론 능력도 있겠지만 이름도 한 몫 단단히 하는듯 하다. 요즘 텔레비전, 유투브 등을 보면 능력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정치든 예능이든 극소수 이름난 유명인 주위에서 모든 세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 보면 이름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이 나고 다른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동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름으로 출연한다고 가정해 보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고 다음 선거에 출마할 때도 다른 이름으로 나간다고 해 보자. 그리고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상이 된다면 하나의 이름을 고집하는 정치인, 예능인은 욕심많은 사람으로 치부되어 발 붙이기 어려워 질 수도 있다. 나름 고민해서 새로운 임무에 맞는 최적의 이름을 지어 대중 앞에 나서는 거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세상의 분위기, 대중의 편견이 달라질 수 있다면 한번 해 볼만한 것 아닌가. 그동안 하나의 이름 속에 가둬두었던 자아를 해방 시켜줄 때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누구나 다 아는 한 유명 가수의 질문이 이제 좀 바꿨으면 좋겠다. “네 이름이 뭐니?”에서 “지금 어떤 이름을 쓰고 있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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