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최면술사
어떤 동물의 무리를 별다르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특이성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원숭이 무리에게는 troop을, 늑대 무리에게는 pack이란 용어를, 하이에나 무리에게는 clan 용어를, 말 무리에게는 band 라고 다른 용어를 주는 식이다.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집중력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모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 “무리group”일 뿐이지만 다른 용어가 주는 묘한 마성이 있어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무시하기 힘들다. 독특한 문화가 특별히 없음에도 “강남 스타일”, 아파트는 다 똑같은 아파트임에도 “강남 아파트”라 부르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학교 교과서, 학교 시설과 교실, 인프라는 비슷한데 강남에 있는 학교라고 부르면 무언가 다른게 있는듯 하다. 지금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군대 시절 장교식당은 사병에게 무언가 달리 보인다. 정작 들어가 먹어보면 별반 차이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동일한 것에 다른 이름을 붙였을 때 실제로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름은 때론 아이콘이 되었다고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시인은 오래전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꽃으로 바꾸는 마법같은 순간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시를 해할 생각도, 시인을 비판할 의도는 더더군다나 없다. 다만 이름으로 핀 꽃은 시간이 그 이름을 녹슬게 할 때 어김없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어쩜 지금 세상은, 이름은 몰라도 수줍게 핀 모습을 기억하면 견뎌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