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는 조건
이름을 외워 누군가를 아는 것과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아는 것 중 어떤 것이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외워 불러 주는 사람을 보다 신뢰하고 고마워 한다. 이름 외우기 힘들어 또는 이름에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얼굴을 통해 한 사람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이름에는 관심없고 얼굴로 사람에 집중할 때 자신을 알고 있다고 느끼기 힘들고 이름 조차 모른다고 섭섭해 하고 때론 화도 낸다. 표현은 그만큼 중요하다. 다만 표현, 즉, 표면으로 떠 올라 보여지는 언어는 큰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한 만큼 이를 악용하기에도 용이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관계 속 내용을 다루기 힘들고 해결의 길이 멀고 어려울 때 우린 단번에 해결할 도구를 이용하곤 하는데 소통에서 돈이란 만능 스위스 칼을 쓰는 방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돈을 쓰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얼굴의 표정을 살피며 한 사람을 알아가는 대신 이름을 부르고는 그 사람을 모두 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돈이 고마운 역할을 함에도 악용될 소지도 많다는 것을 익히 알듯 사람의 이름만 외울 뿐 정작 내용은 텅 빈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 얼굴로 상대방을 알고 있다는 마음이 어떻게 해야만 이름을 불러 환심을 산 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어렵지만 실은 이미 우린 답을 알고 있다. 우린 얼굴 한번 봐주는 것에 대한 느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치부해 버리고 이름을 외워 불러 주는 사람에게 더 큰 믿을 가지고 다가간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란 시는 현대, 특히 디지털시대에는 다른 시 구절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얼굴을 힐끗 보아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모든 이가 이름으로 넘쳐나는 스마트폰 세상에서 떠 다닐 때 누군가 우리의 얼굴을 힐끗 봐주는 것만으로도 꽃이 되기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