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의 자신감은 파우스트의 거래
잠재력이 시들해질 때 죄책감이 밀려온다
죄책감은 법적인 죄가 아니고 빚을 져서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이 될 수 있는 큰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행위다
생명의 재충전 작용인 셈이다. 사실 처절한 몸부림이다
죄책감 마저 없다면 그저 죽은 목숨과 다름없다는 들릴듯 말듯 하지만 분명 들려오는 내부의 목소리다
목소리에 귀 막으면 지금 바로 우리가 발딛고 있는 곳에서 이미 이룬 것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것이지만, 유령같은 목소리에 귀 열어 죄책감을 느끼면 지금 발딛고 있는 이곳은 아직 내가 머무를 곳이 아니라고 믿고 손에 쥔 모든 것을 놔버리고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전자는 셀럽, 후자는 방랑자라고 부른다
셀럽과 방랑자 모두 대중을 배경으로 삼는다. 셀럽이 대중 속에서 대중의 고혈을 연신 빨아 대면서 하트를 대중에게 날린다면 방랑자는 대중의 뒤에서 비록 들어주지도 않지만 그곳에서 나와 함께 길 떠나자고 글을 남긴다
셀럽이 아무나 되냐고? 그대는 묻는다. 그럼요 아무나 될 수 없어요. 잠재력 모두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막는 길을 아무나 택할 수 없죠
죄책감 없는 모습에서 죽음으로 가지 못하는 나무인형을 본다. 나무인형이 말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