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함이 적용되려면 분류되는 영역region이 있어야 한다
수능 국어 17번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한 대학의 철학 교수의 비판에 못내 불편한 마음이 든다. 국어과 선생님과 해당 분야 전문가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지만 언론 상에는 오직 해당 철학 교수의 비판 의견만 있어 비교할 길이 없다. 국어, 철학 전공자, 전문가는 아니지만 브런치를 빌어 의견을 내어 본다.
먼저 해당 문제는 국어 과목이라는 데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한 철학 교수의 의견으로 문제의 정답을 부정하는 논리를 보면(신문 기사들에 근거), “a=b이고, c가 b이면 a는 c이다”라는 논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제시문의 문장들을 명제로 만들고 명제들의 참 또는 거짓을 엄밀하게 따지는 분석 철학 방법을 사용하는듯 하다. 하지만 분석철학이란 영미철학 외 대륙 철학의 방법론도 있을 수 있다. 논리의 전개와 진실로 받아들이는 방법론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전문가로서 조심스럽지만 상식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에서 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문제가 철학 과목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수능의 국어 과목임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분석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상식 기반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럼 ‘=‘이란 등호가 기호로서 철학의 명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아주 근본적인 정의와 생각부터 전부 다시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즉, 고등학교 교과 수준에서 언어, 문법, 독해 측면에서 다루어질 국어 과목 내용을 갑자기 철학 분야로 가져가서는 문제의 진위를 다른 영역의 방법론으로 다루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문제에 정답이 없다는 다른 근거로, “생각하는 나”와 “영혼”이 같다는 전제를 제시문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삼았다(이 역시 신문기사에 근거). 이 또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철학서를 독학으로 읽고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금 불편해진다. 철학서를 읽다보면 “생각은 언어가 한다”, “언어로 터져 나오는 생각”, “무의식의 구조가 하는 생각”, “구조의 기능”, “언표의 기능” 등과 같은 글과 지식들을 읽으며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런 가능성 또는 엄밀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그런 차원의 의문을 제기하려면 “생각하는 나”와 “영혼”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국어란 과목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비판의 전제로 오히려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비판대로라면, 국어 뿐만 아니라 다른 수능 과목들의 문제에서도 이런 종류의 근원과 논리 전개를 모두 따져 전제를 달지 않으면 정답을 찾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까지 든다. 얼핏드는 예를 들어보면, 수학의 피타고라스 정리 문제를 내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전제로 한다는 조건을 달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철학적 엄밀함보다는 국어의 언어적 논리 전개가 지식을 공부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국어 교과목에서는 훨씬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철학과 교수가 읽어 이해하기도 힘든 지문을 수능 문제로 내었다는 비판을 하면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힘든 철학 전문 지식을 가져와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해 진다.
학문과 교육에 엄밀함이 필요한 것에는 백번 동의한다. 다만, 엄밀함이 적용되려면 학문 분과로 분류되는 영역region이 더불어 엄밀해야 한다. 수능이라는 엄청난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수험생에게 이번 정답 없음 제기가 어떤 의미로 귀결될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