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싫다던 엄마의 고양이 입덕기
비록 나 혼자 살면서 카루를 키우고 있지만, 나는 카루가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환영받길 바랐다. 사실 아빠나 동생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당시에 나는 독립을 하긴 했으나 내 집은 부모님 집과 걸어서 불과 20분 거리였다. 아직 많은 것을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어 나는 부모님의 인정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결혼 후 평생소원인 아빠도 그 소원을 지금까지 실현할 수 없었던 만큼 엄마가 카루를 만지고 밥을 주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았다.
처음 동생이 구조해 온 카루를 키운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의 반대는 대단했다. “너 내가 고양이 키우라고 독립시켜 준 줄 알아? 미쳤어? 당장 내다 버려!” 성인이 된 이후로 엄마한테 그렇게 큰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털 날린다며 네가 혼자 동물을 어떻게 키우냐면서 만날 때마다 난리였다. 그렇지만 키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엄마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카루를 데리고 온 첫 주말. 아빠는 고양이가 보고 싶다면서 엄마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작고 애교가 많은 카루는 아빠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엄마는 네 마음대로 하라며 싸늘했지만 아기 고양이라서 그런지 아주 무서워하시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아빠 덕분에 부모님은 거의 주말마다 우리 집에 오셔 카루를 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카루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카루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카루는 엄마를 앉아서 쳐다보기만 하는데 이상하게 아빠는 물었다. 심지어 두 발로 달려들어서 아빠 발만 물었다. 엄마는 그게 웃겼는지 한참을 즐거워하셨다. 엄마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아는 걸까? 보란 듯이 ‘아빠 물기 쇼’만 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아빠가 애잔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혼자 놀다가 신이 났는지 엄마 앞에서 털을 크게 부풀리고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통통통. 나도 아직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마침 엄마가 있을 때 그 행동을 보여주었다. 사이드 스탭이란 아기 고양이들이 잘하는 행동으로 놀다가 신이 났거나 놀랐을 때 등을 말아 털을 부풀려 몸집을 크게 보이게 한 상태로 만든 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옆으로 통통통 튀는 행동을 말한다. 성묘가 되면 잘하지 않는 행동이다.
나는 고양이 유튜브를 많이 봐서 알고 있는 행동이지만 엄마는 매우 놀라며 재밌어하셨다. 아마 이 기점으로 엄마는 카루를 완벽하게 예뻐하셨던 것 같다. 엄마가 당시에는 인정하기 싫었는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나중에 고백하셨다. 카루가 사이드스탭 밟을 때 귀여워서 아주 홀딱 빠져버렸다고 말이다. 하는 짓도 웃기고 사실 생긴 것도 귀여우니까.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카루가 개인기를 마스터했다. 가족들에게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부모님이 오시는 주말을 기다렸다가 한 번에 보여줬다. “카루, 앉아, 손, 하이파이브!” 모두 성공하고 카루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부모님을 쳐다보았다.
그날 카루는 부모님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엄마랑 아빠도 해보겠다며 간식을 들고 카루에게 개인기를 시켰는데 역시나 성공했다. 마침내 엄마는 처음으로 고양이에게 간식도 줘보고 쓰다듬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이 키우는 고양이들은 아직도 엄마가 못 만지는데 카루만큼은 엄마가 만질 수 있겠다고 했다. 심지어 카루는 사랑받을 줄 아는 고앙이라며 칭찬하셨다. 특별고양이 취급받아 나는 약간 으쓱해졌다.
지금은 부모님이 카루에게 나를 맡기고 지방으로 이사 가셨다. 엄마는 영상통화를 자주 거시는데, 매번 카루를 보여달라고 하신다. 부모님은 서울에 자주 오셔서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곤 하신다. 최근 엄마가 나랑 침대에서 같이 잤는데 내 다리 사이에서 자던 카루를 보고 “언니 잘 부탁해, 언니 잘 돌봐줘야 해 카루야~” 하시는 걸 보고 살짝 감동했다. 지난 주말에는 침대 옆 캣타워에 있는 카루를 보고 갑자기 "귀여워"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부모님은 내가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카루가 들어오면서 내가 이 집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서로 의지할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어느새 인정하시고 편안해지셨다고 한다. K장녀답게 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카루와 서로 잘 의지하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