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가

하이데거가 묻다, 당신은 '세인(Das Man)'입니까, '현존재

by 파로파로

1.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낯설음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혹은 주말 오후 멍하니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낯선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흉내 내고 있는 삶인가?'


우리는 열심히 삽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베스트셀러를 읽고,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평균'에 가까워질수록 내 안의 무언가는 텅 비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 기묘한 상실감을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단순히 돈이 없거나 실패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 (피투성)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불렀습니다. '거기(Da)에 있다(Sein)'는 뜻입니다. 우리는 신처럼 완벽한 존재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아무 생각 없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작은 꽤 억울합니다. 부모를 선택한 적도, 태어날 시대를 고른 적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선택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 '내던져졌습니다(Geworfenheit)'.


대본도 없이 무대에 억지로 떠밀려 올라온 배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기에, 우리는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망칠 곳을 찾습니다. 그곳은 바로 '타인들의 숲'입니다.


3. '그들' 속에 숨다 (세인)

내던져진 삶이 너무 무겁고 무서워서, 우리는 아주 달콤한 마취제를 선택합니다.

바로 '남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세인(Das Man, 世人)'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그들(The They)'은 특정한 누구가 아닙니다. 얼굴 없는 익명의 다수입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요즘은 이게 유행이래."

"그 나이 때면 보통 결혼을 하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우리는 주어를 '나(I)'에서 슬그머니 '그들(They)'로 바꿉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해석해 놓은 대로 세상을 봅니다. 남들이 줄을 서면 같이 서고, 남들이 분노하면 같이 분노합니다.

왜냐고요? 그게 편하니까요.

'평균'이라는 거대한 무리 속에 숨어 있으면, 내 삶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고유한 빛깔을 잃고 'N분의 1'이 되어갑니다.

이를 하이데거는 '퇴락(Verfallen)'이라고 불렀습니다.


4. 불안, 나를 깨우는 알람

하지만 다행히도(혹은 불행히도), 이 안락한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옵니다. 하이데거는 그 계기를

'불안(Angst)'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는 흔히 불안을 병적인 것, 없애야 할 것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축복입니다. 공포(Fear)는 대상이 있습니다. 개가 무섭고, 시험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습니다. 그냥 막막하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모든 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이 불현듯 찾아온 불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야, 남들이 정해준 대로 사는 거 이제 지겹지 않아? 그건 진짜 네가 아니잖아."


불안은 우리가 '세인'의 옷을 입고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홀로 서게 됩니다.


5. 죽음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이 된다

불안을 통해 홀로 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최종 보스는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애써 무시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지"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보라(Sein-zum-Tode)"고 조언합니다.

자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의 삶이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세인'들 속에 숨어 있어도 죽음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죽음만큼은 철저히 나의 몫이며, 대체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삶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지금 내리는 눈송이가 사무치게 소중해집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낭비하기엔 내 시간이 너무나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6. 다시, 던져(Entwurf)보라

우리는 세상에 수동적으로 '내던져진(Thrown)'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자각하고 '세인'의 삶을 거부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미래로 '기획 투사(Entwurf)'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던져진 환경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어떤 '가능성'을 향해 나를 던질지는 오직 나만의 몫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심플하고도 서늘합니다.


"남들의 잡담에 귀 기울이지 말고, 당신 내면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니 부디, 타인의 인생을 흉내 내느라 당신의 하나뿐인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맺음말

2026년의 어느 날, 문득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온다면 도망치지 마세요. 스마트폰을 켜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대신, 그 불안을 가만히 응시해 보세요.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 진짜 당신의 삶을 살라는 간곡한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숲길(Holzwege)을 걷는 여행자입니다. 길이 끊긴 곳에서 헤맬지라도, 그 헤맴조차 당신만의 고유한 길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