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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Apr 20. 2024

높은 곳에서 아래를 둘러보는 고양이

좀더 높은 곳에서 나의 위치를 살펴 볼 줄 알아야 한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감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의 알고리즘은 고양이의 특성, 고양이의 어리광, 고양이 용품으로 가득한데 특히 고양이의 특성에 그런 부분이 나와있었다.


 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첫째 온이는 홀로 있었을 때 가장 높이 올라가 봐야 테이블 위였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이 고양이 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둘째를 데리고 오고 부터는 냉장고 위에도 우리 아이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했다. 몸집도 작은 아이가 천정까지 닿는 캣 타워에 순식간에 올라가기도 하고, 형에게 냉장고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손수 시범까지 보여주며 오르내렸다.


 그 후로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을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 곳에서 내가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몸을 웅크려 낮잠을 청하기도 했으며, 번갈아 올라가며 서로를 감시했다.


 아이들의 눈에서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으로 비추어 보며 시뮬레이션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자신이 아래에서 놀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평소에는 키작은 우리 아이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며 아이들의 귀엽고 동그란 뒷통수를 보았다. 하지만 이제 냉장고로 올라가는 고양이들을 보려면 턱 아래부터 보게된다. 하얗고 통통한 배 윗부분부터 목쪽으로 올려다 보면 굉장히 당당해 보이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기 까지 한다.



 숲속의 왕인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건가... 아이들이 위에서 아래를 거느리듯 내려보는 것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진지한 눈망울에 멋져 보이기 까지 하다.






 일상 생활을 하다보면, 지금 나는 나의 전체 인생에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그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고, 운동하고, 집으로 와서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거나 밥을 주고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거리다가 방에 들어가 몸을 뉘인다.


 그러한 일들이 매일 지속되면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 하기도 하고 저녁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기도 하면서 내가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다.


 뉴스를 보면 많은 연애인들이 나름의 그럴듯한 일을 하고 인기를 얻고, 또 연말이면 그러한 것들에 대한 상을 받는다.


 지난 1년, 나는 상을 받을 만한 무엇인가를 해놨을까. 하면 고개가 숙여지다. 거꾸로 벌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까?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움직였기 때문에 내가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움직였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라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좀더 여유있고, 좀더 예쁘고 대단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게을렀다면.. 거꾸로 더 힘들고 고단하게 살수도 있는 거겠지.


 고양이들처럼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높은 곳에서 지켜본다면 너무 틀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틀어졌을 때 바로 잡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시간이 지금의 삶이 조금이라도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냉장고 위로 올라가 보자. 그래서 지금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혹시 비뚤어져있다면 나의 고양이 온이와 흑미가 바로잡아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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