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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ul 11. 2024

수다쟁이 막내고양이

잘 듣는 것도 능력이다. 

 둘째 흑미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정말 그동안의 고양이에 대한 모든 이미지를 싹 다 깨 부수는 일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얌전하고, 조용하고, 고양이를 옆에 두고도 책을 읽거나 함께 잠을 자는 등 아주 동영상이나 사진에서 나오는 듯한 일상을 가져다주는 귀여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 고양이 온이는 정말이지 내가 놀아줘도 눈만 까딱까딱할 뿐 그리 좋아해 주지 않아서 거의 모든 장난감이 새것 그대로 있었고, 열심히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척도 안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멋진 일상은 둘째 흑미가 들어오고부터는 바뀌었는데, 

흑미는 아주 수다스러운 고양이다. 데리고 올 때부터 바지를 잡으며 몸을 타고 올라온 특이하고 신기한 녀석이었지만, 종알종알 종알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말을 걸어왔다. 이 아이.. 예사스럽지 않다. 


 종종 갑자기 내리는 비에 온이가 반응하여 소리를 내주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냥냥냥냥 음양 냥" 하며 마치 꼬부랑할머니가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는 입맛을 다시는 소리까지... 

 처음에는 나도 신기해서 "그랬어? 그래서~ " 라며 맞장구를 쳐 줬지만, 그것도 일상이 되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이제는 나를 붙잡는 묘기를 부려준다. 으미? 

온이는 그저 나에게 다가와 내가 자신의 눈높이 까지 끌어올려주길 기다리거나, 내가 내려앉기를 기다렸는데, 흑미는 올라오고 싶다는 것인지 두 팔을 쭉~ 내 배 쪽으로 뻗어온다.  올려달라 그러는 건가.. 그러면서 또 옹알옹알 알 수 없는 말을 웅얼 거린다. 나름 내가 없던 시간의 일들을 내게 전해 오는 것일까. 


 "형아가 놀아주는 척하더니 잠을 자 버렸어요!"

 "형아가 나를 때렸다구요! 이렇게 이렇게! "

 "형아만 예뻐하지 말고 나도 예뻐해 줘요!!!"


사실 흑미는 내가 바라봐 주지 않아도 나를 보고 쫓아와서 귀찮게 하다 보니 나의 눈은 더 나이가 많은 온이에게 간다. 쓰다듬을 때도 온이를 먼저 만져 준다. 그러면 흑미도 자신도 만져 달라는 듯 쫓아온다. 예뻐서 두 아이를 한꺼번에 만져 주면 이내 온이는 저만치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고양이도 자신의 말에 반응을 해주면 더 말이 많아지듯,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요즘은 힘들고 고된 일이 많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에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뭔가 조용해지고 분위기가 어색하다고 생각해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면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쯤에는 나 혼자 떠들어 댔다는 느낌에 자동차 밑바닥의 콘크리트를 뚫고 저 아래로 숨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을 때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내가 분위기를 일부러 띄울 필요도 없거니와 분위기가 좀 어색하다고 하여 상대가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 내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막 떠벌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되려 상대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내가 상대에게 집중해 주고 관심을 가져 주고 눈을 맞춰 주는 것이 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 흑미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보다 고양이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풀어야 할 나의 숙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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