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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Nov 21. 2024

에세이분야 크리에이터 선정, 또다시 일어난 마법

억지로 하다보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에세이분야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었다. 알림도 꺼 놓아 지인이 발견하고 알려주었다. 이런 배지가 이렇게 갑자기 붙는 것이구나. 들어가 보니 배지가 붙어있고 스토리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어떤 것에 열정이 식어갈 무렵, 나에게 이런 일은 법칙처럼 일어난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조용히 열심히 한다. 아무런 결실이 없는 시간들이 계속 지나간다. 나는 지쳐간다. 아, 이제 그만둘까? 아니야 조금만 더 해볼까? 그런 기로에 선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우위를 점해갈 때, 마법과도 같이 어떤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그것을 계속한다. 이제 몰래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어느 정도 봐줄 만큼 그 일을 할 줄 안다.    


물 공포증으로 초반에 남들보다 느리고도 힘들게 수영을 배웠다. 그런데 오래 지속한 결과 물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생전 없던 비염이 생겨버렸지만 수영을 계속하는 것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지속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익사하는 상상을 하며 물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포의 대상과 만나는 날들이 지속되자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물 앞에만 서면 항상 찌질이였던 나에게 깡이 생겼고, 공포의 대상은 더 이상 공포 그 자체는 아닌 게 되었다. 꼴 보기 싫지만 매일 봐야 하는 친구쯤은 되었다. 그러다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너, 그렇게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구나?!


선입견 너머로 몰랐던 매력을 발견해 버린 것. 그리고 절친이자 베프가 되었다. 공포든 싫은 것이든 매일 보면 친구 비슷한 것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은 흔하지 않지만 종종 일어난다. 평소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미운 사람과 대판 전투를 벌이고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경우가 있다.(나의 경우에 말이다) 끝장을 보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부부 사이에도 지지부진 냉전기간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시원하게 싸워 한번에 끝내는 것을 좋아한다. 갈등이라는 놈을 도마 위에 올려 이유식 다지듯 곱게 다져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약간 집착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어찌 됐건 수영 초급반에서 모두 퀵판을 떼고 맨 몸으로 물을 가르며 나가는데 맨 뒤에서 나 홀로 퀵판을 생명줄 인양 부여잡고 간신히 따라갔다. 못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모질이가 된 기분이었다.


좋아, 끝장을 보자.


보통 강습이 없는 날 자유수영을 갔던 것을 강습이 있는 날도 계속 갔다. 수영장을 새벽에 가고 오후에도 갔다. 그리고 계속 물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후, 한 스트로크만 가자,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순간 킥판 없이 서너 스트로크를 움직였다. 다음 날 처음으로로 25M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영법을 구사할 뿐 아니라 물을 너무 좋아해서 여름을 기다린다. 아니, 한겨울이라도 물이 있는 곳은 모두 좋다. 물 공포증을 넘어  비염이라는 장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에게 중독이라도 된 듯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것을 시작하기만 하면 그것을 그만두게 할 무수한 이유들이 생겨난다. 외부적 요인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지루해지거나 더 이상 재미없게 느껴지는 감정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안 밖으로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초기의 나'는 종종 그만두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현재, '중기의 나'는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잠시 느리게 간다. 쉽게 포기하는 쪽은 아니다. 질질 끌면서라도 그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총체적인 부분에서 동일하게 일어난다. 일이나 개인적인 배움, 인간관계에서건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 포기하는 것이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인간관계에서도 나름의 유연성이 생겨서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이를 떠나 어려서부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가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위대한 일을 해낸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단거리 달리기보다는 장거리 달리기에 더 자신이 있다. 정신력이 더 유리한 종목이라면 나는 조금 더 버틸 자신이 있다.   


어찌 됐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었으니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지속해 볼 힘을 얻었다. 의심병이라는 지병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 배지를 준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배지 때문에 나는 당분간은 억지로 계속 쓸 이유를 얻었다. 나는 사실 '긍정의 힘'보다는 '억지의 힘'을 믿는 편이다. 무슨 일이든 '억지'가 일정 부분 필요하고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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