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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누리 May 03. 2022

소중한 하루를 살기 위해 아침을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11년 12월 31일 밤 내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전화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그 친구는 당시 떠돌던 2012년 지구 멸망설을 믿고 있었다. 우는 친구를 실컷 놀렸지만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다.



민망하지만 사실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으로 일루미나티 예언 카드를 보고 내가 이들의 계략에 곧 죽겠구나 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북한의 긴장도가 아주 높아져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쏟아졌고 탄핵 이후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가 비어있었기에 나는 전쟁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나는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고 좋아하는 음식을 더부룩할 정도로 먹고 재미있는 영상을 재미없게 소비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엔 일루미나티라는 두려움에 우울했지만 나중에는 내 마음과 생활 상태에 우울해졌다. 어차피 죽을 테니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덕분에 인생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들었으니 나아지기 위해 죽음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죽음에 대해 공부했다. 죽음을 체험을 하기 위해 영정 사진도 찍고 유언장도 썼으며 옷을 갈아입고 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관에 들어가고 나서야 죽음에 맞설 용기가 생겼다. ‘별거 아니구나. 그냥 이렇게 모든 게 캄캄해지는 것뿐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짧은 인생을 되돌아봤다.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날들. 다른 이들의 시선에 내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모습들. 다른 외모와 다른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과 수많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던 시간이 아름다울 뿐이었다. 내 외모와 성격에 어떤 단점이 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음‘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달았다.


어느 소중한 하루 _ 북촌에서


내 가볍고도 무거웠던 우울증은 그렇게 끝났다. 살아있는 이 지금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사하니 우울할 틈이 없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시작은 알지만, 끝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한다. 죽는 순간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1시간 뒤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자신, 내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인 듯 누리며 살아가자. 이 소중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써보자. 행복과 감사 또한 매일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긴 글을 쓴 오늘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내일 눈뜨고 일어나면 또 까먹을 나를 위해 오늘은 베개 옆에 작은 쪽지를 써두고 잠들어야겠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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