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본 적 있는 사람,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_조안나
부산 토박이인 나는 20살에 뮤지컬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26살에 미국 취업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어제 책을 통해 만난 조안나 씨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모두 떠나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동생 혼자 서울에 올라가는 것이 걱정된다며 작은 언니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함께 왔다. 내 걱정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서울에 올라가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 취업에 성공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가지 못했던 때 언니가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
'서울에 상경한 사람들은 다들 신림에 산다고 하더라'라는 막연한 말을 듣고 신림 부동산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술집이 와글와글한 역세권 원룸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모든 게 낯설었다. 길을 걸어가면 들리는 버터 발린 서울말이 낯간지러웠고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무엇보다 공기가 정말 어색했다.
샤워하며 프로듀스 101 시즌1의 노래를 자주 들었었는데 서울 상경 당시의 그 낯선 느낌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올라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어렸던 나는 상경이 신나기보다는 꽤 두렵고 힘들었던 것 같다. (아직도 프로듀스 101 노래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무겁고 슬픈 걸 보니)
친구와 가족의 왁자지껄한 축하 속에서 보냈던 생일이 서울에서는 너무나 조용해 혼자 울었던 생각도 난다.
가족들은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상경 후 몇 년 동안 우리에게 ktx 서울역은 눈물의 공간이었다.
꿈을 찾겠다는 포부를 안고 왔지만 동시에 가족에게 엄청난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족들이 헤어질 때마다 우는 게 괜히 내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인 것 같아서. 특히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가족과 생이별한 우리 강아지 동글이가 생각나면 참 슬펐다.
당시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게 지금은 가족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꿈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가족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으면 뭘 할 수 있겠냐고. 매정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서울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이별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서울역에서 울지 않았고 나 또한 이별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지도 않았다. 아, 동글이와는 정말로 이별했다.
함께 웃으며 수다 떨던 매일의 저녁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느꼈다. 몸이 떨어져 있더라도 연결되어 있음을. 이별 후 살게 된 새로운 삶에서 뭔가 배워가고 있음을.
서울에 올라온 나를 보며 내 친한 친구 h는 본인도 부산을 떠나고 싶다고 얘기했다. 부산에 계속 있기보다는 어딘가로 가고 싶다고. 하지만 조금은 두렵다고. 두려움을 껴안으며 미국 취업을 준비한 h는 작년 말 미국으로 떠났다.
작년 겨울, 마지막으로 친구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괜히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h야. 너 붕어빵 그립지 않겠어? 겨울에 호호 불어먹는 저 따끈한 호빵 그립지 않겠어? 미국엔 그런 거 없다~'라며.
떠난 지 8개월이 된 h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괜찮냐고 물어보니 h는 가족과 친구가 그립다고 답했다. 서울에 상경했던 7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친구도 낯선 공기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겠구나. 그때의 나처럼 가족이 참 보고 싶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이었다. 첫 상경의 낯선 공기를 떠올린 것은.
그리고 어제 또 그 공기를 만났다. 바로 서아람 작가님의 글을 읽고.
서아람 작가는 결혼 후 미국에서의 삶에서 큰 외로움을 느꼈다. 그때마다 읽고 썼다고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작가의 생각과 필력이 깊어졌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부럽다. 나도 이렇게 글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3부 <내일 또 우울해도 괜찮아>를 보며 계속 마음이 먹먹했고,
5부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를 보며 작가의 아름다운 생각에 큰 영감을 받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작가가 느꼈을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를 본인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다짐이 동시에 다가와 괜스레 먹먹했는데 아마 책의 이러한 구성 때문에 더 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는 서아람 작가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찬찬히 글을 써보니 어쩌면 내가 이미 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공간에 상경해 부침을 겪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보려, 잘 적응해보려 노력했으니. 미국에 살고 있는 내 친구 h도 마찬가지이다.
낯선 공간에 나를 던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그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제, 오늘의 읽고 쓰기를 통해 낯선 도전에 대한 용기가 생겼다. 역시 이래서 내가 자꾸 읽고 쓰는구나 싶다. 서아람 작가님과 같은 멋진 필력은 아직 없지만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그 멋진 필력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오늘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