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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Jan 30. 2023

[가시나킥] #6 오늘의 아이스크림

' 4 : 2 ' 를 아시나요?

#6


운동장 풍경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멀리 뛰기를 하기 위해서 다른 곳보다 모래가 푹신하게 깔려 있는 철봉 앞쪽으로는 골키퍼 민정이가 따로 다이빙 연습을 하고 있고, 나머지 10명은 2명씩 짝을 이뤄 운동장에 넓게 서서 기본기 연습을 하고 있는 오후 풍경.


얼마전부터는 몸을 풀기 위해 뛰었던 운동장 8바퀴가 3바퀴로 줄어들고 4:2라고 불리는 연습이 워밍업 운동으로 추가되었다. 4:2는 때로 리프팅, 패스 등의 기본기 훈련을 모두 제끼고 1시간을 넘게 하기도 하는 워밍업이자 기본기까지 대신하는 훈련이었다.


기본적으로 6명이서 하는 이 훈련은, 콘을 가지고 큰 사각형 대형을 만들어 2명은 술래가 되어 사각형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4명은 콘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을 벗어나지 않으며 패스를 돌리는 작은 게임 같은 형식이었다. 드리블은 할 수 없었다. 논스톱으로 패스하거나 패스를 트래핑 하고 나서 다음 터치는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패스가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룰이었다. 2명의 술래는 바깥의 4명이 패스를 돌리는 것을 쫓아가거나 가로막으며 방해하고, 술래가 공을 터치하면 그 패스를 한 사람은 술래로 교체된다.


우리는 다 합쳐 11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재현 코치님 본인까지 포함하여 총 12명이 되어 4:2 훈련을 2팀으로 나눠 진행하게 되었다. 때마다 바뀌기도 하지만, 대개 25번 정도 패스가 돌아가게 되면 안에 있던 술래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사오는 벌칙이 있었기 때문에, 술래는 죽기살기로 방해하려 했고, 나머지 4명은 지겨운 연습 사이 코치님이 공인해준 꿀맛 같은 공짜 아이스크림 타임을 얻기 위해 초집중모드로 4:2를 하게 되었다.


4:2 훈련에서는 여러가지 변칙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술래가 타이밍을 놓치고 나머지 4명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바로 옆으로, 또 다시 그 옆으로 빙글빙글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패스가 빠르게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술래가 예상하고 있던 루트를 속이고 과감하게 사각형 가운데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패스를 찔러 넣기도 했으며, 트래핑을 잘못해서 공이 공중으로 뜨면 다음 터치를 이어가기 위해 공중볼을 술래와 다퉈서 연결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다른 기본기 훈련과 마찬가지로 4:2 역시 기본기가 좋은 신입생들이 안정적인 트래핑으로 이어지는 패스를 구사했고, 나를 비롯하여 나연, 선규, 승아는 술래에게 패스를 컷 당하거나 볼을 사각형 밖으로 보내 버리는 일이 잦았다. 내가 그나마 다른 동갑내기들보다 다행인 것은 술래가 자주 되는 만큼 술래가 되고 나서 패스하는 길을 차단하거나 볼을 밖으로 걷어내는 것도 빨랐기 때문에 다시 술래에서 벗어나는 것도 빨랐다는 정도였다.



4:2는 랜덤으로 팀을 정해서 진행되었는데, 술래를 자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최악의 조합은 역시 예솔이와 민국이가 함께 있는 조합이었다. 민국이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리프팅만 2시간을 넘게 할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를 가지고 있었고, 예솔이는 민국이 못지 않게 리프팅도 잘하는 데다가 예상도 못한 루트로 패스를 잘 하는 감각이 있었다.


서예솔. 예솔이는 마디가 짧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는 그 윤주리보다도 키가 작은데다 깡마른 몸에 까만피부를 가져서 마치 까만콩 같은 이상을 주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예솔이는 작은 키와는 반대로 대범하고 강단이 있는 성격이었는데, 본인과 반대로 큰 키에 다부진 어깨를 가진 가애와 한 쌍으로 가장 친했다. 가애는 민국이 정도의 중간키에 어깨도 쫙 벌어지고 다리도 길쭉하고 뭐든지 시원시원하게 생긴 외모와 반비례하는 수줍음을 갖고 있어서 나는 예솔이와 가애가 어떤 외국 코미디 영화처럼 영혼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화 캐릭터로 따지면 티몬과 품바랄까, 아니 여자애들이니까.. 엄지공주와 포카혼타스 정도의 느낌이려나.


그리고 훈련이 3주차에 접어든 오늘, 하필이면 민국이와 예솔이, 가애까지 한 팀에 묶이고 말았다. 게다가 전재현 코치님도 함께. 이 날라리 코치님은 4:2만 하면 눈빛을 번뜩거리며 패스를 끝까지 돌리려고 했다. 25번의 패스 성공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날이 매일 생기지도 않았지만, 코치님이 있는 팀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빈도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 나는 오늘 잘못 걸렸다. 오 하느님. 오늘 아이스크림은 저란 말입니까. 옆 팀에는 유빈, 아리, 주리, 선규, 나연, 승아가 4:2 술래를 정하고 있었다. 방금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사각형 외곽으로 걸어가는 나연이가 나를 향해 연민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냐 나연아. 그냥 나랑 바꾸자. 손가락을 교차하며 바꾸자는 제스처를 해보이자, 이 가시나가 미소 짓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 그래. 넌 살겠다 이거지. 못된 년.


가위바위보까지 나를 도와주지 않고 나는 결국 처음부터 바로 술래가 되었다. 나와 가애가 먼저 술래가 되었고, 코치님이 공을 패스하면서 첫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하나~!”


숫자는 외각 4명이 함께 세어준다. 코치님이 자신의 왼편 민국이에게 주고, 민국이는 오른발로 공을 잡아서 왼발로 예솔이에게 주는 척했다가 다시 코치님에게 패스를 돌려줬다.


“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더~얿”


코치님과 민국이가 거리를 좁혀 두사람이 반복적으로 주고받는 눈 깜짝할 새에 여덟개째 패스가 돌아갔다. 저렇게 둘이 붙어서 개수를 늘리는 얌생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는 콤비가 코치님과 그 착한 민국이라니! 나는 두다다 달려가서 두 사람 사이에 발을 내밀었다. 내 발을 피하며 오른쪽으로 공을 트래핑하여 가져가는 코치님의 패스를 차단하려 가애도 발을 내밀었다. 가애의 길쭉한 다리가 코치님 앞을 가로 막자, 코치님은 발끝으로 땅을 콕! 찍으며 볼을 공중으로 띄웠다.


“민정이 나와서 받아!”


공중으로 뜬 공이 코치님 왼편에 있던 민정이에게로 향했고, 민정이가 우물거리던 사이에 바로 가애가 민정이 쪽으로 거리를 좁혔다. 민정이가 어설픈 헤딩을 하며 공은 사각형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이때 가애가 놓치지 않고 공에 발 끝을 터치하며, 술래는 가애에서 민정이로 바뀌게 되었다.



“야 인마~ 바로 나와서 잡고 예솔이 보면 됐잖아. 으이구~”


깐죽거리면서 민정이를 구박하는 코치님에게 민정이의 억울한 표정.

“쌤! 쌤이 공중볼로 주니까 그런거잖아요!”


“그럼 터치하지 말고 아웃 되게 두지, 누가 헤딩하랬냐~”

“아, 쌤~ 어떻게 그냥 둬요!”

“에벨레벨레~ 억울하면 빨리 다시 나오시든가~”


에벨레ㅂ… 코치님의 저 얄미운 표정. 3주간 훈련하면서 어쩔 때는 무척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이럴 때는 첫 만남의 그날처럼 대체 이 사람이 운동부의 지도자가 맡는 건가 의심이 든다. 25개째의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날이면 신이 난 코치님이 가끔 그 O다리를 흔들며 개다리춤을 추기도 했다. 그날 술래로 걸렸던 선규와 주리가 약이 올라서 분해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오 전쌤!!! 가뜩이나 열받는데 약올리지 좀 마요오!”


아이들은 4:2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 전재현 코치님의 호칭을 코치님이나 코치선생님으로 부르기 보다 거의 ‘전쌤’이나 ‘쌤’이나 좀 더 격상하자면 ‘코치쌤’ 정도로 부르게 되었다. 전재현 코치님이란 사람이 구령대 앞에서 뛰라고 지시하는 먼 어른에서 아이스크림 내기에서 함께 투닥거릴 수 있는 정도의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다. 뭐 그런다고 열 받는 어른이란 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 다시 가자. 하나~!”


전쌤이 다시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신차려야 한다. 지금 이 조합에서 가장 약한 콤비가 술래가 되었다. 바로 나와 민정이. 외곽 4명은 우리 둘이 술래가 되는 순간 이미 아이스크림은 따 놨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전쌤은 아까처럼 민국이에게로 공을 패스하고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아까와 같은 패턴에 나는 빠르게 두 사람 사이로 달렸다. 그러자 민국이가 바로 몸의 방향을 바꾸고 옆에 있는 예솔이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민정이가 내 뒤를 커버하면서 예솔이 쪽으로 달렸으나, 기본 스피드가 느린 민정이는 패스의 속도를 미리 알고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공은 다시 논스톱으로 예솔이 옆에 있는 가애에게 향했다. 가애는 다시 논스톱으로 전쌤에게로. 공이 시계 방향으로 속수무책으로 돌기 시작했다. 4:2에서 술래에게 가장 안 좋은 패턴이다. 패스에 리듬감이 생기고 술래는 한 방향으로 계속 타이밍을 놓치면서 달리게 되는 것.


“열아홉~!!! 스으물~!!!!!”


시계방향으로 빙빙 따라서 돌기만 하는 사이에 스무번째 패스가 전쌤에게로 갔다. 스무개에 가까워지면서 신이 난 전쌤과 민국이, 예솔, 가애의 숫자를 세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 해졌다. 이대로 몇개만 더 돌아가면 오늘의 아이스크림은 내가 될 터였다. 일단 이 리듬을 끊어야 했다.


“민정아. 쌤 앞으로 가!”


나는 내가 앞쪽에서 압박하던 위치를 바꿔 민정이를 앞으로 보내고 내가 뒤쪽으로 빠졌다. 내가 위치를 바꾸며 왼편 민국이쪽으로 치우치자, 전쌤이 그제서야 방향을 바꿔 다시 오른편 가애쪽으로 공을 보냈다. 시계 방향 뺑뺑이가 멈췄다. 승산이 있었다.


“가애 나와서 논스톱으로!”


전쌤이 방향을 바꿔서 가애쪽으로 거리를 좁혔다. 또 얌생이로 숫자를 불리려고 할 것이다. 민정이도 이를 알아채고 거리를 좁히는 가애에게 더 붙어서 발을 내밀었다. 가애는 더 이상 전쌤쪽으로 패스할 수 가 없었다. 뒤에 있던 나는 가애의 오른편에 예솔이가 사각형 라인에 발을 살짝 걸치고 각도를 벌려주는 것을 보았다. 작은 움직임으로 가애에게 패스 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눈으로 쫓는 것과 실제로 뛰어가는 것엔 차이가 컸다. 내가 뛰어갔을 때는 이미 예솔이가 만들어 준 각도로 가애가 패스를 한 뒤였다. 예솔이는 키가 내 어깨까지 밖에 오지 않는 콩알만한 아이다. 가애가 준 패스를 받는다 한 들 트래핑을 하는 순간 살짝 몸싸움을 하면 다음 패스 사이에 틈이 나서 공을 아웃 시킬 수 있었다.



나는 패스를 받는 예솔이에게 바짝 다가갔다. 예솔이는 오른발을 내밀었다. 오른발이면 민국이쪽으로 논스톱 패스를 하거나, 공을 잡는다면 다시 반대로 가애쪽으로 훼이크를 주려고 할 것이다. 가애쪽이라면 아직 민정이가 마크하고 있었다. 나는 민국이쪽의 패스 방향을 막았다. 그때, 예솔이가 오른발 바닥으로 안쪽 깊숙이 공을 끌어당겨 나를 등지고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았다. 내 어깨쯤의 작고 까만 머리통이 스윽- 회전하며 나를 지나쳤다. 어라? 저렇게 드리블처럼 공을 터치한다고? 발바닥으로 공을 터치했으니 다시 공의 방향을 잡아주는 한 번의 터치가 더 필요할 것이고 그럼 투터치가 되고, 아웃이었다. 아니면 오른발 바닥으로 패스를 하던지.


“전쌤!”


예솔이가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전쌤을 불렀다. 대각선으로 찔러 넣을 생각이구나! 나는 다리를 최대한 벌려서 대각선 패스길에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툭! 소리와 함께 크게 벌린 내 다리 가운데로 보기 좋게 지나가는 공을 보았다. 다리 사이로, 속히 ‘알 먹었다’ 라고 하는 수비하는 입장에서 가장 불쾌한 그것을 당하고 말았다. 예솔이는 발바닥으로 공을 잡아 안쪽으로 깊숙히 당긴 후 그대로 그 발 뒤꿈치를 이용해 내 다리 사이로 알을 먹이고 전쌤에게로 패스를 한 것이다. 뒤꿈치를 쓸 거라고 예상을 못했기에 패스 타이밍도 계산하지 못했다. 제대로 당했다. 이 조그맣고 대단한 까만콩한테.


“스물셋~!!”


전쌤은 뒤꿈치 패스를 받고나서 갑자기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예솔이가 준 기가 막힌 패스의 리듬을 끊고 공을 앞에 잡아 놓고 찰까, 말까 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알을 먹은 수치를 씻어버리려고 마음을 다잡고 전쌤의 앞으로 뛰었다. 전쌤은 이리저리 발을 흔들며 과장된 훼이크를 하다가 내가 공을 뺏으려 발을 내미는 순간 공을 다시 콕 차올렸다. 아, 이놈의 공중볼!


“스물 넷!! 얼른 나와서 받아라~”


“아이 쌤, 진짜 왜 그래요오!!”


가애는 우물거렸고, 예솔이는 거리가 멀었다. 민국이가 평소에 안내는 성을 내며 공중볼로 터치하기 위해 뛰어 올랐고, 민정이도 민국이와 함께 뛰어 올랐다. 민국이가 헤딩이나 트래핑하면 스물다섯. 진짜 끝이었다.


“이야아아아아!!”



티요옹~!


분명 민국이가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뛰어올랐는데, 민국이의 머리에 공이 닿지 않았다. 공은 한 번 높게 튀어 멀리 날아갔다. 민국이는 황당한 표정으로 민정이를 바라봤다. 민정이는 한 쪽 팔을 쭉 뻗은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오~ 나이스 펀치!”

옆 팀 선규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우리팀 모두는 황당하게 민정이를 바라보고 있고.


“…나이스 펀치는 개뿔.. 이 시키야! 빨랑 공 안가져와?”


“…죄송해요~!”


전쌤의 불호령에 민정이가 우는 소리를 내며 공을 가지러 뛰어 갔다. 저것이 바로 골키퍼의 위기 대처 능력인가? 뭔가 25개라고 우기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했던 그 펀치 라운드는 일단락되고, 먼저 술래였던 내가 전쌤과 술래를 교체하게 되었다. 술래로 교체되어 사각형 안으로 들어가며 전쌤은 민정이에게 딱밤 한 대를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의 4:2는 아이스크림 없이 1시간 넘게 진행이 되었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어느새 몸은 후끈후끈 해졌다. 3주차. 김시국 체육선생님이 말했던 전국소년체전 한달 뒤 예선전은 이제 2주정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날라리 전쌤의 비밀노트도 조금씩 내용을 채워가고 있었다.


Note.

-   서예솔 : 기본기O 패스 시야 좋음. 대범.
-   주가애 : 기본기O 스피드 빠름. 조금 망설이는 편.
-   이민정 : 골키퍼. 느림. 임기응변…좋음.




#혹시4:2를아시나요

#아이스크림하나먹겠다고

#얌생이를서슴치않았던

#대범예솔수줍가애

#민정이어떡할래진짜


나의 열다섯은
희한한 가시나들과 함께 찬란했다.
창단한 지 1년도 안 된
오합지졸 여자축구부가
찬란하게 부흥하는 이야기.
리바이벌
가시나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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