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6
20대의 조미지가 살아간 기록.
불안과 희망이 한데 뭉친,
잔인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편린.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감성의 시간이다.
아까전까지는 분명 굿닥터의 작가처럼 "써야한다. 써야한다! 써야만한다!"의 의식속에 전문 서적을 읽고 기록하고를 반복하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말이다. 새벽 2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니, 원.. 창문을 열어 젖히고 음악을 듣고 앉았다. 담배 한개피 물어 부는 모습까지, 딱- 청승이다. 청승.
내가 뭘 쓰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떤 톤으로 어떻게 이야기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해줄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설 뿐. 이야기거리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내가 말하기 전부터 네가 알고, 그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내 스스로 꼭 해야한다고 느낀다면 그게 전부라 생각했다.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진즉에 알았다면, 난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나는 항상 알면서도 모른체 건너뛰었으니까. 꿈의 과정이라는 것을.
한때, 운동선수로 성공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죽도록 힘들고, 더럽게 지겨운 훈련은 안하고 싶었지만. 가수가 되고 싶을때도 있었다. 오디션으로 평가 받기는 싫었지만. 영화 감독이 되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밑바닥 조연출 시절은 없었으면 했다. 잘 나가는 사진작가로 살고 싶을 때도 몰론 있었다. 남들이 다 잘 찍는다고 해주는데 어시스던트부터 배워야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나는 늘.. 도망쳤다. 스스로 '이 정도면 잘했어!' 라고 자위하고 앞에 펼쳐진 과정들을 못본 채 돌아섰다. 간절함이라고는 없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다가 이뤄지지 않을때에는 분명 상처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상처를 극복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알고도 피했다. 다행히 내게는 빠져나갈만한 많은 잡기들이 있었고, '이제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졌다'라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유행따라 옷을 바꿔입듯 꿈을 바꿔 입었다. 이렇게 점점 '꿈'이라는 것이 과정을 생략한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질량이 되어가고 있을때 쯤, 난 비로소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내가 원하는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음을. 원하는게 없으면 삶의 이유도 희미해져 버린다는 것을.. 사람은 반드시 몸이 아파서만 죽는게 아니라는 것까지도...
아무튼, 지금까지 무슨말이냐면- 내가 지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꼭 전달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 볼 생각이다. 이제는 '간절함'이란 것이 스스로를 비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직 이야기라고 드러내기도 뭣한 상태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진행하기 위해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기특함이다. 그래, 오늘의 나는 기특하다. 겨울이라 둥그르르 살 찐 나라도, 통장에 잔고가 단 몇 천원일뿐인 나라도- 오늘은 예쁘다. 장하다. 이번에는 끝까지 해보자. 으자자자자자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