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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Oct 24. 2022

불편한 자리

2013. 10. 8

20대의 조미지가 살아간 기록. 
불안과 희망이 한데 뭉친,

잔인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편린.




Date : 2013.10.08

불편한 자리



 살아가다보면 불편한 것들에게도 적당히 마음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얼굴만 쳐다봐도 짜증이 솟구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이러한 불편한 것들이 내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내 자신이 더없이 찌질하게 보일 때나, 매정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그렇다. 


 나는 한때, 아이들을 촬영한 뒤에 매번 스스로가 경멸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촬영되지 않는 몇 시간 동안의 순간을 못 참고 엄청난 짜증을 부렸다.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말 안 들어 먹는 애새끼들을 찍고 앉아 있어야 하나.’ 그렇게 증폭 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격해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래봐야 애들인데. 저렇게 화 낼 필요 있나?’하며 나를 보는 눈빛들. 나는 알면서도 지치지 않고 예민해졌다. 날 서 있는 칼 같이 뾰족하기만 했다.


 그렇게 몰아치듯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소금에 절인 배추가 돼서 골아 떨어졌다. 촬영이 평소보다 고되게 느껴진 날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혼자 방문을 틀어 잠구고 이불속으로 깊이 숨어버렸다. 며칠이 지나서 그날 찍었던 사진을 작업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때서야 촬영 할 때 내뱉었던 감정이 모니터 밖으로 쏟아진다.


 기막히게도 사진에서 촬영장의 험악한 분위기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들도 본적 없는 예쁘고 깜찍한 표정으로 사진에 멈춰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이 이런 표정을 짓게 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심하게 몰아붙였는가를. 모니터에서 포동포동한 얼굴로 방글거리며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면 “너무 이쁘다~ 진짜 대박이다~”라고 혼자 연신 감탄하며 작업을 한다. 그러다보면 문득 느끼는 것이다. 아~ 나란 인간, 정말 정떨어진다..하고.


 정나미 없고 매정하다 못해 위선적이기까지 한 스스로를 느끼고 나면, 머리를 쥐어짜며 겨우겨우 작업을 마친다. 그렇게 작업한 사진을 메일로 보내고 나면 매번 다짐을 한다. 다음번에 촬영 할 때는 아이들한테 짜증내지 말아야지. 이 다짐은 아마 2년 여간 지켜지지 못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비록 몇 개월간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배웠다고 하지만, 그 어린 아이들이 뭘 안다고 나는 그렇게 답답해했는지. 간혹 아이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도 뱉었었다. 그런 날엔 어김없이 집에 돌아가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나는 정말 그런 내가 너무너무 싫었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아이들이 왠지 밉지가 않다. 뭐랄까, 이해가 된 달까?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부분을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특한 촬영 시간 때문에 포즈나 표정을 재촉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아이들한테 이렇다하게 짜증을 내며 심술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촬영하는 아이도 편하고, 내 스스로도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까르르~ 웃으며 촬영을 끝낸 아이가 부모에게 돌아가기 전 “선생님,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하거나, 혹은 아무 말 없이 내게 쫑쫑 뛰어와서는 폭~ 하고 안기는 것을 경험하고 나자 도저히 진심으로 화를 낼 수가 없다. 그것은 태어나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함이었다. 전에 내가 촬영 할 때 너무 화를 내는 것 같다고 지적하신 분이, “선생님이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래.”하고 말한 것이 무슨 이유였는지를 알았다. 아이들이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걸려서 깨달은 것이다. 뭐, 가끔 유별나게 애를 먹이는 아이가 있으면 촬영을 끝낸 뒤 혼자서 “꿈에서 때릴 거야.”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화보 촬영 말고도 사진 찍는 것을 실습하는 수업을 한다. (일명 포토수업) 3년 넘게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력이 붙어서, 수업 할 때에는 화보 촬영을 하듯이 아이를 몰아붙이거나 재촉하지 않고 실습하는 것을 목표로 차근차근 촬영을 하게 되었다. 총 3~4번의 수업동안 딱 마지막 포토수업 때는 엄하게 촬영 하기도 하는데, 그 간의 수업동안 전혀 나아지지 않는 아이를 볼 때가 그렇다. 특히 8세 미만인 유아반이 아니라, 초등부 이상일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유아들은 한 없이 용서가 되는 반면에, 초등부 이상의 아이들이 스스로 의지를 갖지 않고 촬영을 하면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난다. 


 지금은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아카데미에서 기초 수업을 받는데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다면 아무리 수업을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 때문에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될 때는 평소보다 촬영을 엄하게 코칭한다. 지금은 내가 무섭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어떤 촬영장을 가서도 주눅 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얼마 전 초등부 포토수업 때, 현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현우가 있는 반은 대체적으로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수업하는 동안 분위기가 내내 좋았다. 아이들은 의자를 이용한 포즈를 막힘없이 실습했으며, 가끔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혼자서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해내서 곧바로 포즈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지던 와중에, 현우의 차례가 되어 스튜디오로 올라왔다. 그런데 현우는 무엇 때문인지 손을 베베 꼬며 의자에 앉아 조명만 멀뚱히 처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떠들다가 앞서 한 아이들 포즈를 보지 못했는가 싶어서 옆에서 아이들이 하는 포즈를 보고 따라해보도록 했다. 3명의 아이들이 앞서 포즈를 취했다. 현우는 그래도 똑같았다. 여전히 멍~때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굴도 잘생기고 평소에는 장난끼도 많다는 녀석이 대체 왜 그렇게 멈춰서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왜 포즈를 하지 않는 것인지 물었지만, 현우는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계속 쭈뼛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대치 상태에서 10분이 더 지나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녀석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싫으면 안 찍어도 되지만, 왜 포즈를 안 하는 건지 말을 해주지 않으면 선생님이 너를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말해라! 왜 안 하는 것이냐! ..현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20분이 다 되가는 동안 단 한 개의 포즈도 제대로 못하던 현우는, 결국 곁에 계시던 담당 모델 선생님이 하나하나 손발을 움직여 만들어 주어야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신나게 스튜디오를 뛰어나갔다. 나는 조명정리를 하기 전 현우를 불러 세웠다. 촬영 후 크게 기가 죽어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왠지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현우를 불러서 물었다. “혹시 형제가 있니?” 하고. 현우는 위로 7살 차이가 나는 형과, 아래로 5살 어린 동생이 있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곤 무릎을 쳤다. 


 둘째였다. 관심 밖의 둘째였다. 현우에게 부모님 중에 누가 더 좋냐고 묻자, 엄마 아빠 둘 다 무섭다고 했다. 나이차이 많이 나는 큰형은 사춘기로 부모님이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을 것이고, 5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동생은 동생대로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을 터였다. 


 작은 일에도 칭찬받고 관심 받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현우는 부모님이 크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현우가 말썽이라도 피우게 되면 부모님은 야단을 칠 것이고, 현우가 부모님을 제대로 마주할 때는 혼날 때뿐인 것이다. 칭찬도 많이 받지 못하고, 관심도 많이 받지 못하던 현우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면 무조건 잘못 된 것이고 혼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뭔가 스스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이 두렵고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현우가 안타까웠다. 물론 앞서 말한 이야기는 내가 추측한 것이지만 수업시간에 보여주었던 현우의 행동은 좋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우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현우의 어깨를 감싸고 말해주었다.


  “현우야, 너는 잘 못 한 거 없어. 그런데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선생님도, 친구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뭐든지 해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 없어. 굉장히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너 정말 잘 생겼고,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정말 멋진 거 알지? 나중에 선생님이랑 다시 사진 찍으면 너 혼자 주인공으로 하자. 알겠지?”


 현우가 그제서야 웃었다. 포토수업 시간 내내 우물쭈물 하며 발끝만 보던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나는 내말 알겠으면 마지막으로 선생님 안아줘! 라고 말했고, 현우는 나한테 아이 안기듯이 안겼다. 현우를 잠깐 동안 꼭 안아주는데, 그 느낌이 참 따뜻하고 정겨웠다. 어떤 초등학생들은 내가 얘기하려고 해도 아예 듣지 않으려 하기도 하는데, 현우는 여러 면에서 꼭 5살 난 아이와도 같았다. 이렇게 순하고 예쁜 아이가 물 먹은 수건처럼 풀이 죽어있었다니.. 아까 촬영할 때 몰아붙인 것이 생각나 괜히 코끝이 짠해졌다.


 수업 후에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현우 부모님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현우가 덜 관심을 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카데미에 현우 혼자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말이 사실인 듯 했다. 몇 주 뒤에 아카데미 수료화보를 찍으면 현우는 특별히 칭찬도 많이 하고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주며 촬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우의 일이 있고 나서, 3년 동안 유아 아이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일들이 이제 점점 초등학생에게 이어지는 것 같아 내 스스로도 유아부에서 초등부로 성장한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은 모순적인 내 모습이 주는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역시 불편한 것들에게도 적당히 마음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좋아하는 많은 것을 함께하려면 반드시 가져가야만 하는 필요한 아픔도 있기 마련이니까. 자리를 내준다고 내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들을 인정하다보면 스스로 넓어지기도 하는, 그런 반전이 있는 것이 세상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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