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기울기가 바뀌는 운동장에 대비하라.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by 생각의 인덱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

왜 국가경제력 쇠퇴기에 자산소득에 과도하게 자본이 집중되는가?

왜 강대국일수록 정치적 단합과 시스템 개혁이 어려울까?

'금융화(financialization)' 현상이 사회의 불평등과 장기 성장 잠재력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달러 패권 이후의 세계 금융 시스템은 어떤 형태(예: 다극 체제, 새로운 단일 패권)를 띠게 될까?

이미지 출처: Amazon.com

달러는 왜 여전히 건재한가?

2025년. 미국의 재정 적자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에 육박하고, 관세 장벽은 대공황 시절만큼이나 높아졌다. 생산성 향상은 둔화되었고, 자본은 새로운 생산 능력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자산을 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왜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금융의 닻 역할을 하는 걸까? 찰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가 1996년에 쓴 저서 『세계 경제의 패권: 1500-1990』(World Economic Primacy: 1500-1990)에 따르면, 어쩌면 우리 모두 잘못된 질문을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난 50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강대국의 경제적 헤게모니가 마치 생명체의 생애주기와 닮아 있다고 주장한다. 젊음의 혁신적인 에너지에서 시작해 성숙기에 이르러 경직성과 피로감으로 끝나는 생물학적 리듬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수수께끼는 ‘왜 달러가 흔들리는가’가 아니라, ‘과연 지금의 질서가 영원할까’가 되어야 한다.


경제 패권의 생애 주기

MIT의 경제학자였던 킨들버거는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유럽의 재건 과정을 직접 겪은 인물이다. 그는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사람 특유의 차분함으로 어떻게 근대 서양 경제의 주도권이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서 시작하여 스페인-포르투갈 제국, 네덜란드 공화국, 영국을 거쳐 마침내 미국으로 이동했는지를 상세히 추적한다. 이 패턴은 전혀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지배적 위치를 달성하는 행위 자체가 그에 뒤따를 쇠락의 씨앗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제도들이, 시간이 흐르면 번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변화에 저항하는 족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얀 로메인(Jan Romein)은 이를 ‘중단된 진보의 법칙’이라 불렀다. 그는 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한 국가는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하게 되며, 따라서 다음 단계의 진보는 다른 곳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가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장소를 옮겨 지속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15세기의 베네치아는 갤리선 무역과 향신료 교역로에 최적화된 제도를 통해 지중해 무역을 지배했다. 하지만 대서양 항로가 열리고 사치품 대신 대량 상품이 무역의 중심이 되자, 과거의 성공을 이끌었던 바로 그 구조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또한 1850년 영국은 특정한 계급 관계학, 금융 제도, 그리고 제국주의 시장의 조합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 다다라 이 조합은 경직된 장애물로 굳어져 경제성장의 목을 졸라버리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로는 S자 곡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느린 시작, 뒤이은 급격한 가속, 그리고 정체기를 거쳐 쇠퇴에 이르는 과정이다. 킨들버거는 이 패턴이 개별 산업, 기술 혁신, 그리고 경제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물론 현실 세계는 지역적 변수와 부문별 발전 속도의 차이로 인해 이 부드러운 곡선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더딘 성장을 보이다가, 중간 단계에서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이후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다.


성공이 쇠퇴를 잉태하는 방식

그렇다면 왜 쇠퇴는 여러 가능한 결과 중 하나가 아니라 필연적인 운명이 되는 걸까? 킨들버거는 단일 원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이론 모델들은 주로 노동, 자본, 기술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는 이야기의 일부만을 포착할 뿐이다. 프랑스 역사가들은 사회적 가치관을 의미하는 ‘망탈리테(mentalités)’를, 독일 역사가들은 시대정신을 뜻하는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를 언급하며, 이들이 인간의 활동을 촉진하거나 제약한다고 말한다. 킨들버거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종합적으로 바라보길 요구한다. 그의 질문은 현명한 정책이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보다 더 깊은 곳을 파고드는데, 사실 그는 정책의 힘에 회의적이며, 쇠퇴란 성공 그 자체로부터, 즉 초기의 지배력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적응의 결과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길드(guilds)를 예로 들어보자.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는 길드가 품질 기준을 유지하고 기술을 보급하며 기준점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이를 장려했다. 하지만 훗날 한 스페인 역사가는 길드가 어떻게 ‘방해, 억압, 사기’의 온상으로 변질되었는지를 묘사했다. 초기 성장을 뒷받침했던 제도가 상황이 바뀌자 걸림돌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 슘페터가 주장했듯, 독점은 더 높은 이윤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 능력 확충에 투자할 때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윤이 단순히 과시적 소비를 위해 쓰일 수도 있다. 관세는 활력이 넘치는 경제에는 촉진제가 될 수 있지만, 성장기가 아닌 노년기에 접어든 경제에는 쇠퇴를 가속화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제도라 할지라도, 그 사회가 발전의 어느 단계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 것이다.


번영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씨앗을 키운다. 애덤 스미스는 이윤이 높아지면 상인 특유의 검소함이 파괴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냉철한 미덕은 불필요해 보이고, 값비싼 사치가 오히려 그의 풍요로운 상황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썼다. 16세기 페루에서 흘러들어온 은이 조국의 노동 윤리를 어떻게 타락시켰는지를 지켜본 한 스페인 사람은 이렇게 묘사했다. "농업은 쟁기를 내려놓고 비단옷을 걸쳤으며, 노동으로 굳은살이 박였던 손은 부드러워졌다. 상업은 귀족 행세를 하며 작업대 대신 안장에 올라 길거리를 활보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본능적이다. 한때 노동의 증표였던 굳은살 박인 손이 비단 속에서 부드러워지고, 생산의 현장이었던 작업대는 과시를 위한 안장으로 대체된다. 생산적인 노력은 그렇게 과시적인 행위로 변질된다.


puck-protectors.jpg 1883년 『펙(Puck)』 잡지에 실린 「우리 산업의 보호자들(The Protectors of Our Industries)」출처: promarket.org

18~19세기에 이르러 산업화는 이러한 자본가 계급과 실물경제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했다. 예컨대, 이 거대한 전환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증인이 바로 에르메스(Hermès)라는 기업 그 자체다. 1837년, 에르메스는 마차를 끄는 말을 위한 최고급 안장과 마구용품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글자 그대로 '작업대'가 아닌 '안장'을 택한 유럽 신흥 부호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즉, 에르메스는 태생부터 생산 활동에서 벗어나 부와 지위를 과시하던 계층을 위한 물건을 만들며 성장한 셈이다.


이후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자, 에르메스는 안장을 만들던 최고급 가죽 세공 기술을 핸드백과 같은 개인 사치품으로 옮겨왔다. 과시의 상징이 말과 안장에서 자동차와 핸드백으로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산 소득 계층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21세기에 이르러, 버킨 백과 켈리 백은 이 현상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아이콘이 되었다. 결국 에르메스는 19세기 산업혁명기 신흥 부르주아의 등장부터 21세기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전 지구적 부유층에 이르기까지, 번영이 '생산의 미덕'을 넘어 '과시적 소비'로 옮겨가는 모든 과정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투자 소득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주하는 핵심적인 긴장이다. 부의 축적은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서, 다른 사람이 만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행위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애덤 스미스는 정상적인 사업과 투기를 대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자(정상적인 사업)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친 근면, 절약, 그리고 주의력의 결과로 종종 큰 재산이 형성된다. 반면 후자(투기)에서는 때때로 갑작스러운 행운이 찾아온다."


수십 년간의 근면과 절약을 통해 부를 쌓은 상인 계층은 결국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기보다 축적된 자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자산 소득자(rentier)’ 계층으로 올라선다. 19세기 영국은 이 패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대 최고의 부자들은 토지와 도시 부동산을 물려받은 귀족들이었고, 그 뒤를 사업가와 금융업 종사자들이 이었다. 제조업이나 산업 자체에서 막대한 부를 쌓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물 자산을 생산하기보다 종이(증서)를 다루는 일이 부를 쌓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된 것이다.


금융화, 그리고 네덜란드의 교훈

금융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증폭시킨다. 금융이 생산 활동을 압도하게 되면, 시장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자금을 대기보다 기존 가치에 대한 소유권을 거래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게 된다. 이는 경제 주기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내는 징후다. 자본은 더 이상 상업에 봉사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자체적인 게임에 함몰된다. 킨들버거는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무역과 산업에서 금융으로 이동했으며, 베네치아보다는 피렌체와 제노바에서 그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 브뤼허,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런던 모두 같은 궤적을 따랐다.


이 패턴은 심지어 초기 미국에서도 관찰되었다. 1834년 미국을 방문한 미셸 슈발리에는 미국인들이 새로운 마을을 개척할 때 가장 먼저 술집이 딸린 여관을 짓고, 그다음 우체국, 몇 채의 집, 교회, 학교,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행을 짓는 것에 경탄했다. 그는 곰과 방울뱀이 여전히 출몰하는 마을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묘사했다. 펜실베이니아의 포트 카본이라는 마을을 세 번이나 언급했는데, 집이 서른 채에 불과하고 포장되지 않은 거리에는 불탄 나무 그루터기들이 나뒹구는데도 "스키킬 은행 예금 할인 사무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 시기를 ‘은행광 시대(Bancomania)’라고 불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980년대 미국의 금융화 현상은 새로운 일탈이라기보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30년간 이어졌던 이례적인 생산 중심의 시대가 끝나고 과거의 경향으로 회귀한 것에 가깝다.


과거 네덜란드의 사례 또한 이러한 변화를 특히 생생하게 보여준다.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은 금융과 무역의 혁신을 통해 상업적 패권을 차지했다. 1636년의 튤립 투기 열풍은 역사가들이 오랫동안 상세히 다루어 온 사건이다. 암스테르담은 복권 사업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특히 18세기말 프랑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가 여러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연금을 팔았을 때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기술적으로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선물, 옵션 시장과 상품, 주식, 국채에 대한 투기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선물과 옵션 거래에서 특히 혁신적이고 능숙했는데, 이 거래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실물을 보지 않고 공기(허상)를 거래한다는 의미에서 ‘빈트한델(Windhandel, 풍차거래)’이라 불렸다. 한 기록에 따르면 순수한 금융 투기는 17세기 전반에 이미 시작되었고, 후반에 이르러서는 해외 무역보다 더 선호되었다고 한다. 상인들은 이탈리아산 비단과 대리석, 설탕, 향수 원료, 초석, 구리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1609년에는 베네치아 은행을 본떠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했는데, 이곳은 유럽의 외환 및 귀금속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교한 금융 기법도 집단적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7개 주는 1780년 이후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과의 전쟁 및 나폴레옹의 수탈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세 중앙 집권화에 반대했다. 초기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즉, 분산된 주도권, 지방 자치, 혁신을 낳은 주들 간의 경쟁—이 정작 국가적 통합이 필요한 도전 과제 앞에서는 적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킨들버거의 핵심 통찰, 즉 한 단계에 최적화된 제도가 다음 단계에서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경직성, 과잉확장, 그리고 영국의 쇠퇴

제도의 경직화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으로 설명할 수 있다. 킨들버거는 외부 조건이 변했을 때, 과거의 환경에 맞춰 진화한 제도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코즈 정리(Coase theorem) 역시 변화에 따르는 거래 비용이 너무 커져 바람직한 전환을 좌절시키지 않는 한, 제도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 쉽게 적응한다고 인정한다. 낡은 기술이 새로운 기술과 공존하는 이유는 과거의 투자를 매몰 비용(sunk cost)으로 처리할 경우, 기존 장비를 사용하는 한계 비용이 새로운 시스템의 평균 비용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치적 제도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과거의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들은, 그것을 대체하는 데 드는 개혁 비용을 경제주체들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유용성이 다한 뒤에도 살아남는다.


스탕달, 뤼시앵 뢰방. 이미지 출처: livredepoche.com

이는 ‘과잉확장(overstretch)’을 낳는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 "역사의 기록을 살피고, 당신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라. 당신이 읽고 듣고 기억하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불행했던 위인들의 행적을 주의 깊게 고찰해 보라. 그러면 그들 대부분의 불행은 자신이 언제 만족해야 하는지, 언제 가만히 앉아 만족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몰랐다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 프랑스의 루이 14세, 나폴레옹, 히틀러는 모두 자신의 야망이 가용 자원을 초과했던 지도자들의 전형이다. 스탕달은 소설 『뤼시앵 뢰방』에서 이렇게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사람이 자기 재산을 두 배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패턴은 투기 광풍, 제국주의적 모험, 그리고 자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는 기업 확장 등에서 나타난다. 성공은 자신감을 낳고, 그 자신감은 자원이 뒷받침되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점점 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도록 부추긴다.


수세기에 걸친 영국의 궤적은 이러한 역학을 특히 명확하게 보여준다. 산업화 시기에는 창의력의 원천이었던 아마추어 전통이 기술적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부채가 되었다. ‘신사들과 선수들(Gentlemen and Players)’—아마추어와 프로 간의 크리켓 경기를 본떠 기업가적 실패를 다룬 한 논문의 제목—이라는 구분은 경제적 결과를 낳은 사회적 분열을 포착한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했고, 신사들이 리더십을 차지했다. 프랑스 아버지들이 아들들을 기술 전문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보낼 때, 영국의 엘리트들은 이튼과 해로우를 거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자녀를 교육했다. 기술 교육은 ‘그들’을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마침내 지방 대학 설립과 1889년 기술 교육법으로 대응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미온적이었다. 한 연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전쟁 기간 산업계가 연구와 과학의 생산 적용 모두에 무관심했던 것을 고려하면, 기술 교육에 대한 산업계의 냉담함과 과학 인력에 대한 낮은 수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금융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런던은 1870년부터 1914년까지 세계 자본 시장을 지배하며 영국의 저축을 해외로 돌렸고, 그동안 국내 산업은 투자에 굶주렸다. 지멘스(전기)나 몬드(화학) 같은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가 훌륭한 실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위험 산업들은 국내에서 자금을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 자본은 창조적 파괴에 자금을 대기보다 기존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했다. 부유층은 적극적인 경영에서 수동적인 소득 창출로 꾸준히 이동했다. 오늘날 투자자 계층이 보여주는 생산자에서 자산 소득자로의 전환은 이미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영국에서 완연하게 나타났던 현상이다.


New_York_Stock_Exchange_-_panoramio_(2).jpg 뉴욕 증권거래소.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계급 구조는 이 패턴을 더욱 공고히 했다. 성공한 상인들은 사업에 재투자하기보다 영지를 사들이고 귀족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했다. 이러한 ‘시골로의 이동’이 합리적인 계산—공산품 가격보다 식료품 가격이 더 빨리 오르고 농업 지대가 더 안정적이라는—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명확했다. 자본과 인재가 상업에서 빠져나와 고상한 체면의 세계로 흘러 들어갔다. 일하는 사람들과 자본 수익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실제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은 투자수익을 관리하는 금융업에 비해 그 지위가 하락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성장률은 유럽의 모든 주요 경제국과 일본에 뒤처졌다. 1950년부터 1973년까지 영국의 1인당 연평균 성장률은 2.5%로, 1700년 이후 영국의 어떤 장기 평균보다 높았지만 유럽 다른 지역의 성장률에는 크게 못 미쳤다. 파운드화 가치는 19세기의 4.86달러에서 연이은 평가절하를 거쳐 1.60달러까지 떨어졌다.


정책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유화는 활력을 되찾아주지 못했고, 대처의 통화주의와 민영화는 쇄신을 약속했지만 스태그플레이션과 외환 위기를 초래했다. 제도가 경직되고, 사회적 가치가 변화에 저항하며, 분배 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s)이 기득권을 보호할 때, 잘 설계된 개혁조차도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이것이 킨들버거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이다. 즉, 정책은 근본적으로 이 순환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의학이 생명을 소소하게 연장할 수는 있지만 유전적 한계를 넘을 수 없듯이,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은 최적의 정책이라 할지라도 달성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을 가한다.


패턴의 반복과 현대적 징후

이 패턴은 변주를 거듭하며 반복된다. 16세기 스페인의 아메리카 은은 제국의 팽창에 자금을 댔지만, 동시에 생산 능력을 잠식했다. 제럴드 브레넌은 17세기의 급격한 쇠퇴가 "경제적, 물질적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스페인 특유의 속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국민성 때문인지, 아니면 손쉬운 부가 만들어낸 구조적 유인 때문인지는 결과에 비하면 덜 중요했다. 생산이 아닌 채굴에 기반한 경제는 부의 흐름이 줄어들자 여지없이 취약성을 드러냈다. 실제로 상품을 생산하던 노동자들은 은의 흐름에 기대어 사는 자산 소득자 계층에 의해 노동의 유인을 상실했다.


반대로 패배는 경직된 구조를 쓸어버림으로써 국가를 회생시킬 수 있다. 1806년의 프로이센, 1864년의 덴마크, 1945년의 독일과 일본에서처럼, 패배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새로운 지도자들이 채우면서 부흥이 일어난다. 반면 승리는 기득권과 분배 연합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맨서 올슨(Mancur Olson)은 어떻게 소수의 이익 집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어, 각자의 파이를 지키면서 사회 전체의 적응을 방해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오직 재앙만이 그들의 손아귀를 부수고 개혁의 공간을 만든다. ‘불사조 효과(Phoenix effect)’는 패전국이 종종 전쟁 후 10년에서 15년 만에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는 현상을 묘사한다. 물리적 파괴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적 재건이다. 패배는 성공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 변화를 강제한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은 과거 사례들에서 나타났던 익숙한 증상들을 보인다. 금융이 생산 활동을 지배하게 되었고,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자산을 거래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와 그 수익을 거둬들이는 투자자 사이의 거리는 극적으로 벌어졌다. ‘스타 시스템’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때 젊은 구성원에게는 적은 보수를 지급하고 은퇴한 구성원을 부양했던 전문직 파트너십들은 이제 젊은 파트너들이 최대 보상을 요구하며, 불만이 생기면 분리하여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 관계의 해체는 회계, 건축, 금융, 광고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기업의 행동도 유사한 패턴을 따른다. 많은 주요 기업에서 자사주 매입 규모가 자본 지출을 초과한다. 사모펀드는 운영 회사에서 자산을 분리해 빼돌린다. 가장 큰 수익은 운영의 탁월함이 아니라 금융 공학에서 나온다. 경영진이 분기별 실적과 주가 상승에만 집중하면, 생산 능력과 혁신에 대한 장기 투자를 정당화하기 어려워진다. 개별 기업에게는 합리적인 결정들이 모여 경제 전체의 생산적 투자를 고갈시킨다. 경제는 점점 더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소유권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보상을 준다.


2025년의 환경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심화시킨다. 관세는 대공황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회귀하여, 193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높은 평균 유효 세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경제 현실과 괴리된 야심 찬 목표가 추진한 정책의 과잉확장이다. 재정 상태는 악화되고, 적자는 2차 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정치적 연합들은 필요한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자원은 금융 투기와 자산 가격 상승으로 흘러가는 동안 인프라는 붕괴하고 있다. 노동 시장 상황은 냉각되었다. 2025년 7월 일자리 증가는 7만 3천 개에 그쳤고, 이전 몇 달의 수치는 총 25만 8천 개나 하향 조정되었다. 실업률은 4.2%로 소폭 상승했다. 킨들버거의 분석틀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후기 단계의 증상들이다. 생산 기반은 약화되는 반면, 자산 소득자 계층은 팽창하고 투자수익에 대한 청구권 행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남겨진 질문들

이 논의를 시작했던 통화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달러는 명백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현지 자산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으며, 유럽 중심 펀드에는 기록적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현재 58%인 외환보유고 중 달러 비중은 중앙은행들이 금 및 기타 자산으로 다변화함에 따라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달러를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이는 분산된 행위자들이 달성할 수 없는 조직적인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로 의존성이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 거래를 중심으로 구축된 인프라, 달러 표시 시장의 규모,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관성과 신뢰 네트워크 등은 다른 통화로 전환하는 데 드는 거래 비용을 너무 높여서, 시스템이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게 만든다.


일본의 예시는 따라잡기 성장을 무한정 외삽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반면교사가 되었다. 일본은 1950년 이후 25년간 조직 및 경영 기술, 지능적이고 협조적인 노동력, 효율적인 정보 사용, 그리고 한 품목에서 다른 품목으로 자원을 전환하는 유연성을 결합하여 산업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은 킨들버거가 묘사한 패턴을 암시하는 문제들에 직면했다. 해외 투자는 예상보다 수익성이 낮았고, 은행들은 세계 자산 순위 목록을 장악했지만 너무 좁은 스프레드로 운영되어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1990년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붕괴되자 이익은 급감했고 아마도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평가는 명확하다. 일본은 단순한 둔화를 넘어, 수십 년간의 제로 성장과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빠른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던 조정 메커니즘이 적응의 장애물이 되었다. 기업들은 투자하거나 주주에게 환원하는 대신 현금을 쌓아두었다. ‘좀비 기업’들은 값싼 신용에 의존해 생존하며, 혁신에 쓰일 수 있었던 자원을 소모했다. 이 교훈은 킨들버거의 통찰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한 발전 단계에 최적화된 제도가 다음 단계에서는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고용을 보장하는 샐러리맨 시스템은 이동성과 위험 감수를 저해했고, 게이레쓰(系列) 거래 관계는 처음에는 조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결국 기업들을 경쟁 압력으로부터 고립시켰다. 물론, 최근 이 추세가 반전양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호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따라잡기 전략에는 훌륭하게 작동했던 것들이, 미개척 영역의 혁신에는 재앙이 되었다.


최근 수십 년간 중국의 성장은 익숙한 패턴을 따른다. 빠른 추격형 산업화, 대규모 인프라 투자, 기술 차용 및 적응, 미활용 노동력 투입을 통한 생산성 향상. 그러나 킨들버거의 분석틀은 이러한 추세를 외삽하는 것에 대해 신중할 것을 제안한다. 추격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정책은 미개척 영역의 혁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과 다르다. 국가 주도 자본 배분은 이미 알려진 기술을 대규모로 구축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다음 단계를 발견하는 데 수익이 달려 있는 창조적 파괴에는 덜 효과적이다. 중국이 이 두 단계 사이를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아니면 선행자들이 겪었던 장벽에 부딪힐지는 향후 수십 년의 핵심 질문으로 남아 있다.


킨들버거는 복잡성, 다양성, 혼돈,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인정했다. 인구 압력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맬서스적 기아, 농업 확장, 가내 수공업, 도시 이주, 용병 모집, 산업 혁명, 정치적 격변 등. 그러나 구체적인 메커니즘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패턴은 유지된다.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스페인-포르투갈 제국, 저지대 국가들, 영국,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경제 패권의 연속적인 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2025년을 위한 통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분석틀은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를 명확히 해준다. 성숙한 경제는 안정성과 유동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생산성 향상과 괴리된 자산 가격 상승, 운영의 탁월함보다 금융 공학을 우선시하는 경향, 그리고 필요한 적응을 막는 정치적 교착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의 관세율, 전후 최고치에 근접하는 재정 적자, 인프라 노후화, 노동 시장 냉각,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상승 등은 미국이 발전 주기의 후반부에 위치해 있음을 시사한다. 생산자 경제에서 자산 소득자 경제로의 전환은 상당히 진행되었다.


반면 신흥 경제는 기존 기술을 도입하고 미활용 자원을 동원함으로써 높은 성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제도적 취약성, 정책 변동성, 그리고 결국 선행자들의 발목을 잡았던 장벽에 부딪힐 위험을 안고 있다. 최적의 자산 배분은 투자 기간과 제도적 적응 능력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다. 만약 기존 경제 강국들이 위기나 개혁을 통해 스스로를 쇄신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둔화는 근본적으로 건전한 시스템에 투자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직성이 더 영구적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자본은 거버넌스와 변동성의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장기적인 성장을 찾아 발전 주기의 초기 단계에 있는 경제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킨들버거는 진실이 양극단 사이에 있다고 암시한다. 특히 재앙적인 붕괴 이후에는 어느 정도의 쇄신이 일어나지만, 경직화를 초래하는 힘은 놀라울 정도로 끈질기다.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는 결국 그 번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변화에 저항한다. 이 패턴을 인식한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경제 활력의 중심지들 사이에서 자본을 배분할 때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를 명확히 해준다. 지난 500년의 역사는 지배력이 계속해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데, 그 이유는 기존 강자들이 변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직성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자산 소득자 계층은 성장하고 생산 기반은 약화되며, 금융이 상업을 지배하고, 재투자보다 이익환수가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더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와 수익을 거둬들이는 투자자 사이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넓다. 기업 이익은 점점 더 운영 개선이 아닌 금융 공학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연합들은 생산적 투자를 희생시키면서 기존의 청구권 구조를 보호한다. 자산 가격이 치솟는 동안 인프라는 허물어지고 있다. 이것들은 킨들버거의 분석틀에 따른 후기 발전 단계의 증상들이다. 과연 정책이 이 패턴을 뒤집을 수 있을지, 아니면 쇄신을 위해 재앙적인 붕괴가 필요한지는 앞으로 수십 년간 자본을 배분하는 모든 이가 직면한 질문이다. 역사는 일단 제도가 굳어지고 자산 소득자 계층이 지배력을 확보하면, 미미한 조정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시사한다. 성공 자체가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이 순환은 스스로의 힘을 되찾고 반복되는 것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