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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해 Apr 06. 2023

현실에 던져지기


약 1년여의 상담치료가 종결되었다. 상담선생님께서 종결 단계로 들어가도 될 거 같다는 얘기를 처음 꺼내셨을 때 내가 처음 왔을 때보다 정신적으로 단단해졌음을 느끼면서도 세상에 던져져 살아갈 생각을 하니 다시 두려워졌다. 이번 상담까지 상담치료를 3번 정도 했음에도 특별히 이번 상담은 스스로 치료를 원해서 시작한 상담이라 나에게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상담을 받으러 오가는 이 길을 보며 난 반가웠고, 두근거리고 설렜으며, 벅차오르고, 때론 해결되지 않는 마음에 답답함으로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나의 다양한 감정처럼 이 거리도 마찬가지로 사계절 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다 내어 보여주며 쭉 뻗은 나무로 이어진 길이 나를 감싸 안듯 따뜻한 위로와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안정감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좋았고 이곳에서, 이 상담에서 더 벗어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불안하고, 스스로를 갉아먹고, 과거에 얽매여 있으며 답을 찾지 못했지만 전부이기를 바라지 않고 나의 일부인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깊이 느끼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동안 그렇게 찾던 두려움의 이유. 그것은 죽음, 불안, 죄책감, 버려짐, 결핍, 우울 등의 감정과 행동이 있기 전 그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워하는 나, 불안해하는 나, 버려질 나, 망가질 나, 불행할 나, 결핍을 가진 나, 우울한 나, 행복하고 싶은 나, 의지하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은 나, 평정심을 잃은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나, 벗어나지 못하는 나 등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가질 그 모든 나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앞의 내용과 비슷하지만 주어가 명확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차이로 다가왔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내 스스로가 두려웠다. 어떻게 될까 봐가 아닌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마지막 상담의 대화 중 이런 대화 내용이 있었다.

선생님: 역으로 다해씨가 바라는 평안한 상태, 이것들에 해당되지 않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는 건 어떤 상태일까요?

나: 흠...하...근데 그것도 사실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나 봐요. 그 상태에 아직 머물러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미 겪어봤지만 몰라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거 같아요. 그냥 사소한 거 일 수도 있는데...

선생님: 얘기 듣다 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궁극의 편안한 상태를 우리가 추구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나도 죄인으로 살아가는데, 그 평온함이 가능할까?

나: 사실 저는 사람은 완전할 수 없는 존재고, 그걸 추구하는 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면 그냥 이걸 받아들이고 사는 게 맞는 건데... 흐름대로 흘러가면서 이 속에서, 이 지점에서도, 분명 어느 순간에 좋은 부분들은 있을 것이기에. 왜냐하면 제가 이제는 이 우울한 기분 속에서도 고요함을 즐길 때가 있고, 가끔은 우울에 기대어 위로를 받기도 해요. 또 기분 너무 좋을 때는 이걸 즐기는 순간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싫다고 보기에도 무조건 절제해야 한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이 감정의 기복 자체를 힘들어하긴 하는데 이걸 스스로 절제하는 게 힘들어서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사실은 그건 힘든, 불가능한 게 아닌가...



많은 대화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동안 남긴 상담일지를 곱씹으며 앞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난 더 단단하게 살아갈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시로 방해물이 나타나겠지만 조금씩 나아갈 것이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 이전보다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던져진 것은 현실이니까. 내가 좀 우울하고 불안한 것도 여전히 현실이고, 스스로 상황에 맞춰 나를 좀 보호하며 살아가고 또 할 말은 하고 살면서 예전에는 회피하고 잠수 탔다면 이제는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 마음을 품고 기억하며 나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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