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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Jul 26. 2023

대학교 1학년 때 조상님이 도와준 썰

<응 그냥 일단 Go했는데 이렇게 됐어> Ep1.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심사숙고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그 순간 그 선택이 맞다고 생각하면 즉흥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실천한다. 그 선택이 삶을 크게 뒤바꿀 수 있는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스무 살 때도 그랬다. 우연하게 어떤 정보를 접했는데 그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바로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보면 그 선택은 15년 간 눈덩이처럼 굴러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엄청 중요한 선택이었다. 삶이라는 건 참 신기하고 재밌는 것 같다. 


그때 만약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됐을까?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물론 이렇게 즉흥적인 성향 때문에 지난 선택을 아쉬워하거나 후회한 적도 있다. 하지만 스무살 때의 '고민보다 GO!'를 외치며 아무것도 모르고 즉흥적이었던 나를, 조상님이 계신다면 분명 그때 도와주셨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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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바꿀 수가 있다고..? 의대도 가능?


나는 수능 성적에 맞춰 건국대 '토목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고 대학교 네임벨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교 + 가장 경쟁이 낮은 학과에 지원을 했었다. 그게 바로 건국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였다. 


개강을 하기 전, 토목공학과와 환경공학과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토목공학은 뭔가 거칠고 무서워 보였다. 스무 살 때부터 이상주의자 성향이 가득했던 나는 '거칠고 무서운 것 보단 환경 보호에 이바지하자'라는 이상을 갖고 환경공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환경공학과 첫 학기 수업은 별다른 게 없었다. 1학년은 전공을 다루지 않고 공학 수학, 물리, 화학 및 교양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동아리 친구로부터 학교에 '전과'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걸 접했다. 전과를 하면 2학년 때부터 전공을 바꿀 수가 있고, 심지어 건국대는 학점 2.7만 넘기면 전과가 누구나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전공을 바꿀 수가 있다고? 그럼 수의대나 수학교육학과로도 갈 수 있어?"

"응 학점 2.7만 넘으면 자유롭게 다 전공 바꿀 수 있어~ 근데 수의대로 전과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수학교육과는 성적도 보고 수학 시험 따로 봐야 돼."


그 당시 환경공학과 선배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환경공학과가 있는 학교가 많지 않음에도, 워낙 환경공학과를 위한 채용 시장이 작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업하면 베스트라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취업해도 박봉이고 업무 강도도 빡세다고 푸념하는 걸 많이 들었다. 


선배들의 푸념을 많이 듣다보니 졸업 후 암담한 나의 미래를 점칠 수 있었고, 전과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전과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과는 어디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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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골랐던 게 '전자공학과'


동아리 동기들 사이에서 전과가 널리 퍼지게 됐고, 덕분에 많은 동아리 친구들이 원하는 전공으로 전과를 했다. 대개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를 선택했고 공대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친구, 그리고 공대에서 연극영화과로 전과한 선배도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전과를 신청했다가 떨어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제 와서 보니 참 좋은 학교다. 


신기하게 환경공학과 동기들 중에는 전과를 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취업이 어려운 과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전과를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남아있던 친구들이 과에 대한 비전이나 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이 참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쉽게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고 쉽게 휩쓸리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과는 전자공학과였다. 전과할 과를 고른 기준은 '취업 잘되고 유망한 학과'였다. 2008년에도 <전기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의 앞자리를 딴 '전화기'가 공대에서 제일 취업이 잘 되고 유망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전자공학과로 전과하려는 친구는 없었고 다들 화학공학과나 기계공학과로 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친구들한테 잘 휩쓸리는 편이라 다른 과를 따라갈만도 했는데, 그때는 무슨 확신이 있었는지 전화기 세 개 중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친한 친구의 아빠가 한국전력에 다녔는데, 한전이 멋있고 좋아보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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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나 지나서 그런가.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앞으로 뭐먹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꽤나 많다. 그치만 스무살의 나는 참 인생 쉽게 쉽게 큰 고민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때의 선택이 나를 연세대 편입과 카이스트, LG를 거쳐 돌연 블록체인 개발을 하게 만들 줄 알았을까? 아니 전혀 몰랐겠지... 만약 그때의 전공 선택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걸 알았더라면 오히려 너무 많은 고민을 하다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때의 나는 한국전력이 멋있어 보여서 전자공학과에 가고 싶었고, 아무 탈 없이 전과를 하게 됐다. 그리고 전자공학과 2학년으로 전과한 나는 역대급 귀인을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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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냥 일단 Go하다보니 이렇게 됐어> Ep.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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