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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Oct 01. 2023

꿈을 위해 해외로 떠난다는 여자친구

2년을 기다릴 수 있을까? 3년, 아니 5년은?

2022년 10월 1일. 여자친구와 처음 사귀기 시작한 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때로부터 딱 1년이 지나 '1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자친구와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아마 2주년이 되어있을 내년 2024년 10월 1일엔, 여자친구는 한국에 없을 예정이다.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 어딘가에 있겠지...





잠깐 내 과거 연애사를 살펴보면, 이전의 연애들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좋은 면만 보고 빠르게 사랑을 시작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대방에게 서운해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마찰이 잦아졌다. 그리곤 마음이 식어서 6개월 만에 헤어지는 연애를 반복했다. 나는 연애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책할 정도로 늘 똑같은 시작, 똑같은 결말이 되풀이됐다.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모든 연애 에너지가 방전된 후, 주변 지인들에게 '연애 포기 선언'을 했던 나였다.


연애를 포기하고 나니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열정이 폭발했다. 넘치는 열정은 3년간 잘 다니고 있던 대기업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를 계속 다니는 게 내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절대, 아니!!!!!'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난 뒤 한 달 만에 고작 직원수 4명인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이전 대기업에서 우리 팀 신입사원이었던 여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나보다 8살 어렸지만 똑똑하고 일을 잘하던 후배였다. 후배는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던 내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연락해 봤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은 강남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생각보다 대화가 엄청 잘 통했다. 그리고 회사에 다닐 때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던 소식도 전해 들었다.




후배와 얘기를 하고 난 뒤, 연애 포기 선언이 무색해질 만큼 내 안의 연애 세포가 다시 채워졌다.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여러 번 연락을 하며 호감을 표현했다. 나는 원래 길어도 2,3주 안에 사귀거나 그만두거나 관계의 끝을 봐야 마음이 편한 연애 스타일이었지만, 후배의 성향에 맞춰서 한 달을 넘게 연락하고 만났다. 그렇게 내 인생 역사상 가장 긴 썸 기간을 거쳐 2022년 10월 1일에 우리의 연애가 시작됐다.


그동안의 연애와 가장 달랐던 점은 사귀기 전부터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는 점이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과 얘기한다고 해도 이만큼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강을 바라보면서 얘기하다가 막차를 놓친 적도 있고, 전화로 3시간 넘게 얘기한 적도 있었다. 한, 두 시간 전화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우리는 사귀면서 서로의 미래와 커리어에 대한 얘기도 자주 했다. 여자친구는 AI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3년 정도 쌓은 뒤에 해외 MBA과정을 밟을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개발자로 일하는 게 재밌고 적성에도 맞지만,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하면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컨설턴트 쪽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래서 2024년 여름쯤에는 해외 MBA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했다. 유럽으로 가면 짧게는 1년, 미국으로 가면 보통 2년 걸린다고.


회사를 다니면서 안주하지 않고 본인의 꿈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모습이 대단했다. 실제로 올해 5월부터 직장 생활과 MBA 준비를 위해 수험생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데, 하나만 해도 어려운 일을 두 개 동시에 하는 여자친구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여자친구의 열정에 나도 많은 힘과 에너지를 얻는다. 여자친구의 건강과 컨디션이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해외로 떠나서 롱디 커플이 되면 우리 둘의 관계는 어떡하지..? '


'길어도 2년이면 중간중간에 나도 놀러 가고 여자친구도 방학 때 한국 오고 하면 잘 지낼 수 있겠지' 


1년 동안 만나서 서로에 대해 신뢰가 많이 쌓였고, 얼굴을 못 보더라도 전화로 얘기 많이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년에 여자친구가 떠날 때쯤엔 2년 동안 만나면서 더 신뢰가 깊어져있을 거니까.


그런데.




두 달 전 8월쯤, 카페에서 여자친구의 MBA 졸업 이후 커리어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됐다. 졸업 이후에 웬만하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할 것 같고, 굳이 한국 기업으로 취업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훨씬 더 좋은 조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굳이 다시 한국 기업에서 일할 이유는 없었다. 근데 그러면 MBA 이후 해외에서 최소 2, 3년은 더 일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최소 1년, 최대 2년이 아니었다. 최소 3년, 최대는 4년 이상이었다. 3년...? 3년을 기다릴 수 있을까?


3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4년, 5년 더 늦어지는 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나 때문에 여자친구의 커리어에 영향을 주는 건 절대 원하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여자친구도 2, 3년 뒤의 미래 얘기를 주고받다가 긴 생각에 잠겼고 대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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