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텔에서 결혼해서 식비 비쌌는데 축의금 10만원 내고 밥까지 먹을 거면 차라리 안 오는 게 낫지."
[난제 중에 난제, 친구 축의금 정하기]
나이가 올해 서른다섯이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도 꽤 많이 결혼을 했다. 어림 잡아도 40번 가까이 축의금을 냈던 것 같다. 10년 전, 스물다섯 살에 처음으로 대학교 동기 누나 결혼식에 가면서부터 내 축의금 계산은 시작됐다. 그때는 당연히 학생이어서 안 친하면 5만원, 친하면 10만원을 냈다. 그리고 29살에 대학원에 가고 31살에 취업을 하고 지금까지 '안 친하면 5만원, 친하면 10만원' 룰을 계속 고수해 왔다.
손가락에 꼽을 만큼 친한 친구가 결혼한 적도 없었고, 동아리나 특정 단체에서 다 같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누구는 10만원 내고 누구는 15만원, 20만원 내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가도 오르고 취업을 해서 버는 돈도 많아지긴 했는데 똑같이 10만원을 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렇지만 10만원보다 더 내기엔 일찍이 축의금을 했던 친구들이 더 친한 경우도 있고 처음에 세웠던 룰을 바꾸기도 애매해서 그냥 어느 정도 친하면 무조건 10만원을 해왔다.
왜냐하면 내가 결혼할 때도 그냥 내가 줬던 만큼만 축의금을 받으면 되니까. 그리고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상대방의 행복한 날을 축하해 주러와준 정성이 중요한 거니까.
[축의금 내고 욕먹기.. 신선한데?]
이런 나의 변함없던 10년 간의 철칙을 깨게 해 준 일이 생겼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던 어느 정도 친했던 친구가 작년에 결혼을 했다. 이때도 별생각 없이 축의금으로 10만원을 냈다. 이 친구랑 같이 만나는 동아리 무리가 5명 정도 됐는데, 이 친구의 결혼식 이후에 다른 친구도 결혼을 하게 되어 청첩모임을 할 때 다같이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마침 결혼 비용과 관련된 얘기를 하던 중, 이 친구가 나를 한번 슬쩍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호텔에서 결혼해서 식비 비쌌는데 축의금 10만원 내고 밥까지 먹을 거면 안 오는 게 낫지."
나한테 욕을 하거나 대놓고 비난을 한 건 아니지만, 내 마음에는 쌍욕급의 상처로 남았다. 결혼 관련 돈 얘기를 하다가 때마침 나한테 한소리 하고 싶어서 얘기한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웠는데 난 이런 말을 들으면 조리 있게 말을 잘 못해서 "아 그랬구나 미안... 좀 더 냈어야 했는데 내가 이런 걸 계산을 잘 못해서... "라고 얼버무리며 사과를 해버렸다. 친구는 "아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답했는데 얼굴은 영 언짢아 보였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를 올해 초까지 두세 번 정도 더 만났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기분이 상할 말을 한두 번씩 장난스럽게 던졌다. 예전 대학교 생활 얘기를 하다가 내가 "너네 집에서 그때 축구 보면서 같이 잤었잖아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래?? 그런 적도 있었나 우리 친했었네ㅎㅎ"라고 답했다. 기분 나쁜 말들을 한 두 번 더 해서 이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분간 이 친구가 있는 모임은 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이 넓은 편도 아니기도 하고 요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예전에 친했던 지인이더라도 최근에 만나서 얘기하다가 나를 두, 세 번 이상 불편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으면 다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예전 상황에서 친하고 마음이 맞았단 거지, 지금 나와 그 사람의 상황이 친한 건 아니니까 과거와 상관없이 나를 다치게 하는 관계는 과감하게 끊어 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10년 만에 축의금 인상합니다!]
축의금 10만원 냈다고 욕을 먹어서 화도 나고, 그 뒤로도 친구에게 불쾌한 말을 여러 번 들어서 이렇게 글로써라도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번 찾아봤더니 친구가 했던 호텔 결혼식 식대가 10만원이 넘었다. 생각보다 비싸긴 하네. 근데 그렇다고 미안하진 않다.
이 친구 덕분에 나도 30대 중반이고 꽤 직장을 다녔으니 지인들 축의금을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식비나 결혼식장 비용 같은 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친한 정도에 따라 15, 20만원내고, 정말 친한 친구는 그보다 더 많이 내야겠다. 최근 두 번의 친구 결혼식에는 10만원 보다 더 냈다.
나름 친했던 친구에게 축의금 10만원 받았다고 아쉽다는 말을 들어서 속상하기도 하지만, 10년 만에 "이상하의 축의금 정책"을 개선했는데 적절한 시기에 잘 결정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 안의 앙금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친구를 즐거운 마음으로 초대할 수 있을까? 그때 나의 이해심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반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