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베베 May 12. 2023

Q. 이젠 공연의 가치를 모르겠어

C에게 보내는 소고



A. 공연예술만 갖는 특유한 가치라는 게 있긴 한 거예요? 나도 그런 게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거 찾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공부시작했는데 아직 못 찾고 있거든. 이쯤 되니까 그건 공연계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 같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왜 우리 어릴 적에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게 자랑이라고 배웠잖아요. 근데 진실은 그냥 옷값이며, 냉난방비 많이 들뿐 이라는 것처럼. 그로토프스키가 들으면 무덤에서 뛰쳐나오겠지만, 한날한시 한 장소에 불특정다수가 모여 한번에 관람해야 한다는 게 21세기에도 유의미하고 독점적인 가치가 될까. 아니 나는 이게 바로 공연이 경쟁에서 밀리고 위기에 처한 이유라고 생각해요(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지). 나부터도 오늘 공연 보러 가는 날이다 생각하면 귀찮거든요. 이 귀찮음이 도무지 극복이 안돼. 시간들이고 비용 들여 이동해서 정숙하게 정좌하고 해야 하는 이 행위가 참 비효율적이에요. 그냥 방에 편히 누워서 버튼 누르고 놓친 대사, 놓친 장면 앞뒤로 돌려가며 보는 게 비교도 안될 만큼 효율적인데 공연이 애초에 상대가 될까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위기는 더 심각할지도 몰라요. 이제 방법은 이렇겠네요. 파란 알약을 먹거나, 빨간 알약을 먹거나. 우리는 이미 먹어버린것 같지만요.


다 쓰고 보니 이건 경제학 물이 덜 빠진 채로 인문학 한다고 깝죽거리는 인간의 전형적인 사고 같네요. 이래서 내가 졸업을 못하나.


-


공연바닥에서 구르다 만난 (이제는 과장님이 되신) C의 인스타그램에 달은 댓글을 가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만이 갖는 특유한 가치는 결국 내가 찾아내야 할 당면 (그리고 일생의) 과제이다. 

작가의 이전글 4월의 연구생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