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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베베 Nov 09. 2024

24년 10월까지의 연구생 일지

너무 게으른 거 아니냐.


3월 이후로 무려 반년 간 연구생 일지를 못쓴 이유는, 본격적으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하면 바로 그렇다라고 대답은 못하겠지만 어쨌건 결과물을 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한다.


1.

봄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4월 3일에 절반가량 쓴 논문을 지도교수님께 보낸 기록이 있네. 열심히 논문을 썼었나 보다. 절반짜리 논문 참고문헌 6p를 포함해 총 44p. 한 문장 한 문장, 아니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코멘트를 해 주신 지도교수님의 지도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에 드렸던 논문은 '굳이 코멘트하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이유로 코멘트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자리를 맴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진전은 횡(橫)적 진전이 아니라 종(縱)적 진전이었나 보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코멘트.

2.

6월부터는 2개월 반짜리 장기 작품을 시작했다. 여러 번 같이 일했던 회사이고, 근무지도 가까워서 공부와 병행하기 나쁘지 않았다. 출연진들이 연세가 좀 있으셔서 일요일 공연이 1회라는 점도 내게는 플러스. 좋아하는 작품이라 즐겁게 근무했던 것 같다.


3.

8월 말에 공연이 끝나고, 그다음 주에 바로 4박 5일 일정으로 엄마와 함께 대만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엄마랑 함께하는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 이때가 아니면 엄마랑 같이 시간이 되는 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어서 결정한 여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잘한 일 같다. 엄마가 너무너무 행복해했기 때문에. 엄마 사진을 많이 찍어왔는데 동영상도 많이 찍어올걸 조금 아쉽다.

대만은 첫 방문이었는데, 여행기간 내내 해가 쨍쨍해서 어딜 가든 참 좋았다. 특유의 향 때문에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서 걱정했으나 엄마도 나도 아주 잘 먹고 잘 마셨음. 첫 방문이라 한국인들의 국룰 루트로 여행을 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국룰엔 이유가 있는 법. 펑리수랑 누가 크래커는 맛만 보자 싶어서 여행 마지막날에 맛집별로 한 박스씩만 사 왔는데 이게 아주 큰 실수였다. 일주일도 안 돼서 다 털어먹고 상사병에 헤롱 대다가 결국 직구로 여덟 박스 구매함. 조만간 누가 크래커 사러 타이베이 또 가지 싶다.

엄마도 나도 가장 좋아했던 운선낙원


4.

출국하기 며칠 전에 최종 초고를 지도교수님께 드렸다(와, 나 제법 열심히 살았네). 제목 동일, 참고문헌 8p 포함 총 75p. 긍정적인 부분이 없진 않지만 갈길이 멀다는 답변을 여행 중에 받았다. 이번에도 심사는 물 건너간 건지 여행 내내 속이 바짝바짝 탔다. 다녀와서 교수님과 줌으로 미팅을 하고, 9월 말까지 퇴고한 원고 상태를 보고 심사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9월 말까지 삼주남짓 정말 미친 듯이 퇴고를 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잠을 충분히 잤다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점이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핵심요인이었지 싶다. 약속된 시간에 퇴고를 제출했고 '고칠 부분은 아직 많지만' 이번 학기 심사를 받으면서 고치자는 답변을 받았다. 정말 오래, 간절히 기다려 온 심사였던지라 정말 기쁠 것 같았는데 의의로 덤덤했다. 아마, 정말 잘 써서 뭔가 족적을 남기고 싶다는 오래 품었던 헛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겠지.

참고문헌 9p 포함 총 81p. 지도교수님 제안으로 원 제목에 '하나의'라는 수식어가 하나 들어갔는데 뭔가 시적이고 단정한 느낌이라 아주 맘에 들었다. 주변에서도 멋진 제목이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흐뭇. 서류 준비하고 막바지 퇴고하고 원고 제출하고 바쁘게 지냈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있기 마련이고, 내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적절한 모양이다. 헤맨 만큼이 다 내 땅, 거쳐온 길은 내게 맞는 최적의 경로라던데 맞는 말이라고 믿고 싶다.



5.

심사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으로 호된 공격을 받았다. 철학의 길은 거칠고, 철학자의 지적은 참으로 매섭다. 헛된 희망은 버렸다고는 했지만, 사실 오래 깊이 품었던 내 논문에 대한 자부심은 떨치지 못했기에 꽤 실망스러웠다, 나 자신에게. 그래도 답변은 막힘없이 했고, 생각지 않게 지도교수님께서 방어도 해주시고 덕에 자연스럽게(?) 심사를 통과했다. 애초에 심사보다 더 큰 산이 지도 교수님의 납득이었기 때문에 마땅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심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현기증이 나서 꽤 힘들었다. 그리고 열흘 남짓을 푹 쉬었더니 11월 9일, 오늘이다.




늘 그렇듯이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되짚어보니 참 열심히 살았다. 초고를 완성하며 가장 자주 든 생각은,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다 견디고 버텨 학위를 거머쥔 위버멘쉬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다 말인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지독하기도 하지. 누군가 내게 학위 과정이 이런 것이라고 진지하게 귀띔해줬더라면... 아니다, 나는 그래도 했을 것이다. 나는 불나방이니까.

종 심사는 12월 말. 중간심사 끝나고 병 걸린 사람처럼 자고 먹고 쉬고 열흘을 충전했으니 이제 다시 달려야겠다. 다음 연구생 일지에는 최종 심사 통과 및 졸업에 대한 소회를 담을 수 있기를.




+ 약간의 옵시디언, 조테로 이야기를 덧붙인 포스트의 조횟수가 폭발했다! 그만큼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으시다는 이야기일텐데 사용기를 좀 더 써볼까 싶으나 옵시디언 활용은 거기서 그쳤다는 안타까운 소식... P와 J가 반반 섞인 인간이 활용하기에 옵시디언은 너무나 열린 툴이네요. 지금은 조테로로 논문 관리하는 정도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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