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학생이었다. 나는 스물일곱, 남편은 서른.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난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싶었다. 당시 남편은 공익근무 중이었고 2학기 대학원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제대 후 복학 전까지 시간 여유가 있으니 남편과 한 달 배낭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우린 서둘러 결혼했다. 결혼 자금을 아껴 여행 준비를 하고 어떤 곳을 어떻게 돌아다닐지 자료를 찾았다. 학생 신분에 해외여행은 자주 못 갈 것 같아 여권도 단수여권으로 준비했다. 첫 해외여행. 그것도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이걸 이루자고 결혼도 일찍 했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우리에게 작은 사고가 있었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넘어져 무릎인대를 다쳤고 발목 피부도 조금 까졌다. 무릎은 치료해서 좋아졌으나 예상치 못한 발목 상처가 유럽 배낭여행에 발목을 잡았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피부가 재생되지 않았다. 큰 부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유럽 여행을 가기엔 위험했다. 병원에서는 피부 이식을 하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피부 이식으로 한 달 정도 목발을 짚고 걸었고, 수술비용으로 많은 돈을 치렀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유럽 배낭여행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이걸 위해 결혼도 빨리한 건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여행을 취소하고 엄청 울었다. 배낭여행을 앞두고 있어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간단히 다녀왔는데. 한탄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혼여행이라도 제대로 갈 걸. 나를 다치게 한 남편이 원망스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 여권은 써보지도 못하고 만료됐지만, 남편은 그 여권을 써서 하와이 학술대회에 갔다. 취업 후엔 혼자 몇 번이나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그에 비해 나는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남편 학비를 내며 몇 년 동안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알프스 바이크 여행을 보았다. 멋져 보였다. 자동차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연의 바람을 느끼며 알프스 산과 아레강을 바라보고 싶었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를 오르면 '바람은 얼마나 시원할까? 경치는 정말 멋지겠지? 지나치는 관광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 나는 여전히 유럽 배낭여행을 꿈꾼다. 4년 후면 결혼 20주년이 된다. 한 달 배낭여행은 아닐지라도 알프스 바이크 여행이라도 꼭 해보고 싶다. 알프스의 멋진 장관을 보며 생각에 잠기겠지. 어쩌면 그곳의 아름다움보다, 젊은 날 이곳을 꿈꿨고, 오지 못해 좌절했으나 이날을 간절한 소망했던 일이 떠올라 눈물 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