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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립스틱 Dec 16. 2022

<옥상 달빛이 환하던 그 여름>

작고 은은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등은 따숩고 바람은 상쾌한 늦여름 어느 날, 우리는 자주 옥상에 올라가 바람도 쐴 겸 옥상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누웠다. 옥상 달빛이 유독 환하게 비추던 날도 있었고, 은은한 별빛이 반짝반짝 예쁘게 빛나기도 했다. 동요를 부르기도 했고, 북두칠성을 찾아 국자 모양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달궈진 옥상 바닥은 따뜻했고 저녁 밤바람은 시원했다. 피를 먹겠다고 극성인 모기를 쫓으려 모기향을 피워 놓고 연기에 콜록거리기도 했다. 엄마랑 4남매가 얇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다. 가끔은 서로가 좁다고 투닥거리다가 혼난 날도 있었다. 낮에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내어와 한입 베어 물 때면 아삭함과 달콤함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어떤 날은 옥수수, 어떤 날은 포슬포슬한 감자를 삶아 먹었다. 낮에 따서 널어놓은 봉숭아 꽃잎을 손톱 위에 올려 예쁘게 물들이기도 했다. 엄마는 비닐 조각과 끈으로 손톱을 싸매어주며 내 손톱이 길고 예쁘다고 칭찬했다. 

  옥상 계단은 안마당과 연결되어 있다. ‘ㅁ’자 형태인 우리 집은 방 4개와 부엌, 목욕실, 창고 2개, 샘터, 헛간, 대문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마루를 거쳐 들어가는 방문은 아주 작은 창호지 문이었다. 인사를 해야만 드나들 수 있는 겸손해지는 문이다. 생각 없이 드나들다 문틀에 머리를 박는 날엔 이마에서 번개가 번쩍 쳤다. 철없던 시절 문밖을 보겠다고 침을 묻혀 방문에 구멍을 냈다가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도 있다. 토방에 신을 벗고 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놀기도 하고, 숨바꼭질하겠다고 좁은 벽장에 숨어 숨죽이고 있던 날도 많았다. 부뚜막과 연탄보일러, 가스레인지가 한곳에 있는 우리 집. 엄마는 분명 부엌이 편치 않았을 텐데 그곳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달달한 불고기, 입이 얼얼한 닭볶음이 쉼 없이 나왔다. 김에 고소한 들기름을 발라 맛소금을 뿌리고 아궁이 불에 구워주기도 했고, 콩을 맷돌에 갈아 담백한 두부를 손수 해주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내가 20살 때 낡은 집을 허물고 2층 벽돌집으로 다시 지었다. 헌 집이 헐리는 게 기쁘면서도 아쉬웠다. 재래식 화장실이 부끄럽고 연탄보일러가 부끄러워 친구들도 초대하지 않았던 집이었는데, 막상 사라지니 사진 한 장 제대로 없는 게 아쉽다. 친정은 아직도 같은 곳에 있지만 어릴 적 우리 집도, 동네 길목도, 마을 연못과 커다란 오리나무도 모두 사라져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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